지금은 남자아이 여자아이 구분없이 잘기르는데 옛날에는 남아선호가 심했다던데 왜 그런지 궁금해요
남아 선호 사상은 농경사회에서 남성의 노동력을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아를 여아보다 선호하했어요. 비록 산업 혁명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약화되기도 하였지만 사회 구조상 남성이 항상 유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 우리나라는 성리학적 유교 사상과 양이 우선인 사고로 남아가 중요시 되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글은 언제부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게 되었나요?
한글 가로쓰기의 시작은 1869년 페롱 신부가 완성한 <불한사전>으로 알려집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사용했던 가로쓰기를 성경이나 문서에 반영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주로 직접 글을 쓸 때 활용되었고 책을 출판할 때는 여전히 세로쓰기였습니다. 공식 문서로는 광복 이후이며, 1945년 12월 8일 교육심의회에서 한글을 가로 적기를 의결하였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문제가 되었는데, 1949년 9월 25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나가는 가로쓰기 방침을 수립하였고, 1960년대부터 정부의 모든 공문서를 가로쓰기로 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북관대첩비와 북관대첩은 어떠한 전투였는지요?
북관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1592년 9월부터 1593년 2월까지 의병장 정문부가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가 점령한 함경도 북부 지역을 수복한 전투입니다. 정문부는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에 한글로 쓰여진 편지는 얼마나 전해지고 있나요?
조선시대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이 발명되고 일상에서 사용되었으며, 편지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여러 편지를 통해 안부를 물어보기 하였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너는 어찌하여 이번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어제 너의 언니는 물론, 숙휘까지 패물들을 많이 가졌는데 네 몫은 없으니, 너는 그 사이만 하여도 매우 안 좋은 일이 많으니 내 마음이 아파서 적는다. 네 몫의 것은 아무런 악을 쓰더라도 부디 다 찾아라." 묻고 있습니다.숙명공주는 효종, 현종, 장렬왕후, 인선왕후에게, 그리고 정조가 원손 시절 외숙모에게 쓴 편지 등 많은 글이 전하고 있어요.
평가
응원하기
페이스 메이커는 어디서부터 나온 말인지 궁금합니다
페이스 메이커는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장치 부분을 페이스 메이커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페이스 메이커는 마라톤 등 장거리 경기에서 다른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율하는 보조자를 의미합니다. 페이스 메이커가 있으면 속도의 모범을 보여 실제 선수가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어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에 만들었던 정원 중에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정원은 무엇이 있나요?
조선 시대 궁궐 정원으로 대표적인 창덕궁 후원 이외에도 유명한 사설 정원으로 보길도 윤선도 원림이 이 있어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에 위치한 보길도 윤선도 원림이 있습니다. 원림은 학자 윤선도가 여생을 보낸 곳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가진 정원입니다. 그리고 서울시 성북동에 위치한 성락원은 조선시대의 3대 비밀 정원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남도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은 조선시대의 3대 비밀 정원 중 하나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조선시대 별서정원의 백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임금은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을까요? 아니면 수도 한양에서만 머물렀을까요?
조선 시대 국왕이 직접 궐밖으로 나가서 민생을 살피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신 암행어사라는 특별 관리를 파견하여 민생을 감찰하였습니다. 암행어사는 국왕의 명령을 받아 수령의 감찰하고, 민생을 탐문하여 국왕에게 사실대로 아뢰었습니다. 다만 강무와 사냥을 통해 궐밖으로 나가 민생을 살피기도 하였습니다. 강무는 국왕이 공식적으로 사냥을 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히 놀이가 아니라 군사훈련이고, 이를 통해 민생을 둘러봅니다. 그외 세종, 세조, 정조 등 행궁 행차 등을 통해 민생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 국왕이 왕의 신분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한 적은 없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은 문화 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계 유산은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종묘(1995년)’, ‘석굴암 ·불국사(1995년)’, ‘창덕궁(1997년)’, ‘수원화성(1997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한국의 서원(2019년)’, 가야 고분군(2023)의 문화유산과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한국의 갯벌(2021)의 2개의 자연 유산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선풍기 키고 자면 죽는다는 미신이 아직도 존재하나요?
'선풍기 켜고 자면 죽는다'는 것은 낭설입니다. 선풍기를 켜고 자면 피부와 콧구멍 속이 건조해 질 수 있습니다. 콧구멍 점액이 과도하게 분비게 될 수 있는데 , 이는 호흡 방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선풍기 바람을 밤새 쐬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신체 근육이 긴장되거나 경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뻐근해지지만 사망이 이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선풍기를 켜고 자면 모터 과열이나 과부하로 화재가 발생하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임금도 마패를 가지고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는 마패를 이용하여 공무 수행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왕실이나 관리가 말을 역참에서 이용할 수 있는 증표였습니다. 마패는 1~10마리까지 말이 그려져 있으며 해당 숫자만큼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관리는 1~3마리, 암행어사는 3마리, 왕실은 10마리 마패를 사용하였습니다. 영의정은 7마패, 국왕은 10마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