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는 여러니라에서 한국말은 한국에서만 사용하잖아요왜 그런가요?
아랍어가 한국어에 비해 전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슬람교 확산 영향입니다. 이슬람교의 경전 <쿠란>은 아랍어로 기술되었으며, 성경과 달리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7세기 이후 이슬람교의 확산더 더불어 아랍어가 확산되었으며, 무슬림들은 반드시 아랍어로 된 쿠란을 읽어야 합니다. 반면 한국어는 한국에서만 쓰는 것은 한국은 오랫동안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민족으로 고유한 문화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는 한국의 팽창과 같은 제국 확장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어는 한국 문화의 대표하는 독특한 문화를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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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언제부터 어째서 매운것을 잘먹는다는듯한 인식을갖게댄거신가여?
한국인이 맵게 먹게 된 계기는 고추의 전래입니다. 원래 고추는 16세기 일본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고추장, 고춧가루가 점차 젓갈, 소금 등을 대체하는 양념으로 쓰이면서 김치, 무침, 장류 등에 매운맛에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매운 것을 잘 먹는다"는 인식 자체는 1950~60년대 한국 전쟁 이후 가난, 스트레스, 굶주림을 겪는 사횡서 떡복이 매운 짬뽕, 닭발 등 자극적인 매운 음식이 위로와 소비 대상으로 유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1980년대 신라면 등 가공 식품이 발달, 2000년대 K푸트 유행으로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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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이야기로 재밌게.푼 책이 있을까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덕분에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질문한 것 같이 한국사를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풀어쓴 책으로는 우선 이현희 선생의 <이야기 한국사> 시리즈가 있습니다. 소설처럼 풀어쓴 통사로 사건, 인물 중심으로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어 밤새 읽는 한국사 이야기>, <용선생 만화 한국사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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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박왕열이 도대체 어떤인물이죠
마약왕 박왕열은 국내에서 수산물 수입 유통 회사를 운영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필리핀으로 넘어가 한국 도주자, 사기, 카지노 투자 사기와 연루되면서 범죄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2016년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 사살해 사건 공범, 주범으로 지목되어 투옥됩니다. 하지만 필리핀 교도소 수감 중 인맥을 통해 마약 제조 유통에 들어가 '마약왕'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마약을 한국에 대량 유통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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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선생님은 순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성설, 이위종 선생의 이후 활약은 어땠나요?
1907년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된 헤이그 특사로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입니다. 하지만 이준 선생은 헤이그에서 순국하셨지만 이상설, 이위종 선생은 이후에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수행했습니다. 이상설 선생은 미국, 유럽, 러시아를 오가며 한국의 독립 외교 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크 지역에서 한인 동포 사회를 중심으로 성명회, 권업회 조직을 주도했으며, 1914년 대한광복군 정부의 통령에 추대되었습니다. 이위종 선생은 헤이그 행사 실패로 미국을 거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 연해주 일대에서 의병 운동을 지도했습니다. 그는 1908년 연해주 동의회 회장으로 활약했으며, 권업회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19017년 러시아 혁명과 적백 내전 당시 적군에 속해 한인 조직을 지도했으나 30대 후반 행적에 대해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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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를 포함하는 역사 참고 문헌에 대해서
전쟁을 기술한 대표적인 도서로는 <세계 전쟁사 다이제스트 100>(가람기획)으로 동서양 전쟁을 시대순으로 100개 정리한 책으로 전쟁사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제러비 블랙)은 전쟁이 어떻게 인류 사회에 영향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벌거벗은 세계사>,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등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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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최고/최악의 사건은 무엇 인가요?
이 질문 방은 역사 관련 질문 게시판입니다. 역사와 관련된 질문을 한다면 아는 범위에서 성심껏 답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현재까지 살면서 최고, 최악의 사건은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듬어 보면 가장 최악의 사건은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 아무말 못한 일, 그리고 최고의 일은 현재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하게 된 계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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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는 실제 어떤 인물이었나요??
엄홍도는 역사속 인물입니다. 그는 조선 전기 영월의 호장으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영월 호장 엄한저의 아들로 1457년 계유정난 이후 유배된 단종이 청령포에서 사사된 이후 세조가 '시신을 거두지 말라' 엄명에도 불구하고 몰래 아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장사 지내고, 후손들은 흩어져 운둔하여 살며 단종의 묘를 지켜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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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은 어떤 방법으로 모았나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독립운동가 스스로 자신의 자산을 처분하여 독립 운동 자금에 충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회영 6형제는 당대 최고의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국권피탈 직후 자산을 처분하여 국외 독립 운동 기지 건설에 주도했습니다. 또한 국내외 여러 부호 및 동포들의 기부에 의해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임시정부는 애국공채, 독립공채를 발행하여 판매 대금으로 독립 운동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액면 100~1000원 단위로 5%의 이자를 약속하고 약 4000만원 규모의 독립 공채를 판매했습니다. 그 외에도 친일 부호, 은행 등의 기관을 탈취하여 독립 운동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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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김무력 장군은 가야에 속했을 때 명장으로 평가되나요?
김무력 장군은 금관가야의 구형왕의 세째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버지 구형왕이 532년 신라의 법흥왕에게 귀부할 당시 신라로 왔습니다. 그리고, 김무력 장군이 본격적으로 활약한 시기는 진흥왕 시기로 550년경 단양 적성 전투와 한강 유역 공략에서 군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키고 2만9600명을 섬멸하는 대승을 거둬 각간(고위 관직)에 올랐습니다. 따라서 신라 귀부 이후 20년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입니다. 당시 나이를 짐작해도 30~40대라 한다면, 금관 가야에서 왕자 시절에는 어렸을 것입니다.따라서 가야 문헌의 부족과 어린 나이를 짐작하면 가야 시기 김무력 장군의 활약은 없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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