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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 간의 최초의 대규모 전쟁은 무엇인가요?
역사상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간의 최대 전쟁은 십자군 전쟁입니다. 셀주크튀르크의 성지 순례자 박해에 따른 동로마 제국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구원 요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원정을 제창하였으며, 1096년부터 1272년까지 8차에 걸쳐 200년동안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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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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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몽골의 속국이었나요? 속령이었나요?
1259년 강화 이후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부마국입니다. 몽골 황실과 통혼을 통해 정치적 기반을 강화했지만 몽골의 내정 간섭은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고려는 몽골의 봉신국으로서 90년 가까이 지배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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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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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안토니우스 장군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83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2차 삼두정치를 주도한 군인정치가입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친구이자 지지자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과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카이사르가 암살되어 카이사르의 장례식에서 민중을 선동하여 암살자들을 몰아내는데 성공으로써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립했습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자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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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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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랑 트로이전쟁 전설일까요 진짤까요
트로이 전쟁은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다>, <오디세이>에 기술된 전쟁입니다. 역사적 사실인지, 전설적인 이야기인지 논란이 되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하인리히 슐레이만의 발굴과 트로이 유적이 발견되어 진실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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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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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 있다는 망묘루는 무엇을 하던 누각인지 궁금합니다.
망묘루는 '종묘를 바라보는 누마루 집'의 뜻을 가진 집입니다. 국왕의 숙소로 종묘 제사 전날 임금이 이곳에서 선대왕을 추모하며 머물었습니다. 임금들은 이곳에서 선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나 글, 그림을 현판으로 만들어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종묘를 관리하는 관리들의 사용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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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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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암각화에 메소포타미아랑 우리나라랑
울산 천전리 암각화와 메소포타미아 간 교류는 여러 상징과 모티브를 통해 주장됩니다. 예를 들어 네발 달린 용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됩니다. 바빌로니아 이수타르 성문에 채색된 돌로 용 모양을 새긴 그림이나 많은 원통형 인장에서 용 그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결 무늬와 마름모 모양은 여성을 상징하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발견되며, 다산과 풍요를 상징합니다. 또한 뱀과 연못은 길가메시 서사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유사합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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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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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문명이 대단하다지만 실제로
그리스 로마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으로 탄생했습니다. 오리엔트 문명은 기원전 35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기원전 3000년의 이집트 문명을 말합니다. 헤로도토스도 <역사>에서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표현했습니다. 이 동방 문명은 에게문명을 거쳐 그리스, 그리고 로마로 전파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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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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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송나라때 여자는무조건조용해야하고 정숙해야해서
송나라 시기에 전족이 보급된 시기로 여성들의 외부 활동을 제한하였습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외부 활동이 어려워져 조용히 집안에서 머물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의 재혼에 대한 비난도 컸습니다. 송나라 사회에서 여성들이 음양론과 사서에 기반한 전통적 덕목인 사덕(마음씨, 말씨, 맵시, 직업)을 지키는 것이 강조되었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조용하고 겸손하며 가정에서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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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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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랑 사랑에빠진현종이야기..유명한데 실제로 며느리였다네요
양귀비의 본명은 옥환으로 그녀는 처음에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 이모의 아내의 아내입니다. 수왕 이모는 현종과 그의 황후 무혜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기 때문에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가 맞습니다. 그러나 현종은 양귀비에 매혹되어 빼앗아 후궁으로 삼았습니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현종과 양귀비가 피신하던 중 마외파에서 현종의 군사들이 양귀비를 처단하도록 요구하여 결국 양귀비는 자결하거나 군사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현종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양귀비를 못잊어 눈물로 지새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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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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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황제 측천무후가 고종후궁으로들어와
중국 여황제 측천무후는 중국 당나라 태종의 후궁이었습니다. 그리고 태종의 사후 비구니로 감업사에 생활하였으나 고종의 후궁으로 다시 궁에 들어와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황후가 된후 자신의 아들을 차례로 황제로 등극시키고 690년 당나라를 주나라로 개명하여 스스로 황제가 됩니다. 그녀는 황태자로 강등된 예종에게 이씨성 대신에 무씨성을 내렸을 정도입니다. 측천무후는 705년, 82세의 나이에 중병으로 몸져눕게 되자, 몇몇 재상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장씨 형제를 제거하고, 그녀에게 황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손을 쓰기엔 늦었다고 판단하고, 셋째 아들 이철에게 황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이철은 나라의 이름을 다시 당나라로 바꾸었고, 측천무후는 그해 겨울에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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