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천재지변에 어떻게 대응했나요?
전근대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천재지변에 대응하는 방법은 기우제를 지내는 등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저수지를 축조하여 가뭄과 홍수에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세종 재위시에는 측우기를 곳곳에 설치하고, 서운관에서 강우, 태풍을 관측하여 관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방쌓기, 청계천 정비, 저수지를 축조하여 대비하였습니다.그외에도 구휼 정책을 통해 재해를 당한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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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천민 신분을 위한 정책도 존재했나요?
조선시대에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으로 재산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비록 과거 응시 제한, 군역 면제가 전부이고, 차별이 심했습니다. 따라서 체계적 권리 보장은 없었습니다. 다만 1426년 노비구살금지법을 제정하여 주인이 노비를 임의로 구타, 살해 금지, 법적 처벌 강화를 통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생명권을 보장한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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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는 왜 런던탑에 갇혀 있었나요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8세의 딸입니다. 그런데 헨리8세의 첫번째 부인 캐서린의 소생인 이복 언니 메리1세가 가톨릭 복원을 추진하면서 개신교들이 반발하여 반란이 일어나자 엘리자베스가 연루되었다고 의심하여 런던탑에 2개월간 투옥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로 계승된 것은 튜더 왕조의 남성 후계자 부재로 여성 통치가 불가피했습니다. 비록 이복 동생인 에드워드 6세가 즉위했으나 조기 사망하면서 메리1세도, 엘리자베스 1세도 즉위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메리 1세 사망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헨리 8세가 만든 법령을 근거로 여성 계승이 보장되어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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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소녀의 날이고 동시에 여성과학자의 날이라는데 이건 왜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나요??
2월 11일이 소녀의 날로 기념하는 계기는 유엔총회에서 2011년 소녀들의 교육 박탈, 조혼 및 노동 착취 등으로 차별받는 현실을 알리고 권리 보장을 위해 지정한 것입니다. 소녀의 날이 10월 11로 일부 자료에서 2월 11일이 언급되어 혼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과학인의 날은 STEM 분야 연구자 중 여성 비율이 33%에 불과하자 2015년 유네스코, 유엔여성기구가 여성 과학자의 차별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2월 11로 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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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염병은 사회 구조와 가치관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역사적으로 14세기 전세계를 휩쓴 흑사병 같은 전염병의 사회 구조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흑사병은 당시 유럽인구의 1/4~1/3을 사망하게 하여 노동력이 부족하였으며,이는 농노 해방을 촉진하여 봉건제 봉기를 가속화시켰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 교회와 성직자의 무능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종교 개혁을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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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민주화 운동은 어디서 왜 일어나게 된 건가요??
2.28 운동은 1960년 대구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이는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의 독재 정치와 정권 연장에 반대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정부는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민주당 장면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기 위해 일요일 등교 명령을 내리자 학생들이 반발하여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3.15 부정선거에 반발한 3.15 마산 시위 이전에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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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국식이름아닌 외국인이름으로도 많이 짓던데요
최근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국식 이름을 짓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식 이름은 독창적이고, 전통 문화를 보존하며, 사회적으로 자연스러운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글로벌한 무대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비영어권 사람들이 발음하는데 불편함이 있습니다. 반면에 외국식 이름은 글로벌 소통과 해외 취업시 적응에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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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와, 징기츠칸과 나폴레옹중에 영토 확장과 업적이 누가 제일 크나요?
역사상 정복왕으로는 징기즈칸이 압도적입니다. 징기즈칸은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그 면적은 세계 인구의 25%로 약 1,200만 km²해 해당하며, 알렉산드로스의 약 520만 km², 나폴레옹의 약 220만 km²에 비해 훨씬 넓은 영역을 정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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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비의 사망원인이 장질부사인 것 같다고 말한부분을 찾고싶습니다.
신문 자료의 두번째 칸의 왼쪽 첫부분에 있습니다. "畢竟膀窄扶斯性인듯한다더라."에서 膀窄扶斯를 말하는 것 같아요. 순헌황귀비 엄비가 결국 장티푸스성으로 사망했다라고 해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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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의 제갈량과 비교될 만한 위나라, 오나라의 책사는 누구인가요?
촉나라 제갈량에 비유되는 위나라 책사로 대표적인 인물은 곽가입니다. 그는 조조가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인물'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원소, 원술, 유비, 손권을 상대로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신들린 전략가 이미지로 중장기 정세 판단과 모험적 전략가입니다. 그리고 오나라를 대표하는 책사는 주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적벽대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하여 조조의 대군을 격퇴한 인물입니다. 또한 강남 기반의 독립 세력을 유지하며, 천하 이분을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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