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펼친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수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태종은 2차례 왕자의 난을 콩해 최종적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자의 난을 승리로 이끈 배경엔 사병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는 언제든 사병을 가진 세력가가 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에 태종은 안정된 왕권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시합니다. 현 고등학교 교과서에 따르면 태종의 왕권강화 정책은 사병혁파, 육조직계제, 호패법 실시, 신문고 설치, 한양천도, 태조실록 편찬, 양전 사업 등이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육조직계제입니다. 행장 각 부서인 육조가 의정부를 패싱하고 왕에게 직잡 보고하여 결정을 받는 구조로 의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왕의 권한을 강화하는 중요한 의시결정 구조입니다. 이는 훗날 세조 때 다시 등장하며 왕권 강화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삼국시대~조선 시대에는 복층 건물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강수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복층건물은 있었습니다. 황룡사 9층목탑이나 법주사 팔상전 같이 불교 건물, 성곽 방어시설로서의 누각 등 복층 건물이 있었습니다. 내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시내를 감상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다만 현대적 주거용 건물로서의 복층 건물은 아닙니다. 복층건물의 부재는 건축 기술적 제약이 있어서입니다. 적심(주춧돌같은 바닥구조)과 기둥이 지붕구조와 기와를 받치기에도 버겁기 때문에 2층으로 만들려면 더 많은 기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공간활용에 있어서 효율성이 떨어져 1층을 사용할 수 없게됩니다. 조선시대부터는 건물 높이에 대한 구체적 제한이 생깁니다. 건물이 곧 권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나 누각 등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에 지명은 어떤기준으로 정해지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강수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재 우리나라의 지명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현이 설치되면서 지어진 이름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시, 군, 읍, 면 단위의 경우 고려시대 부, 목, 군, 현의 명칭과 같거나 유사한 편입니다. 현대의 동, 리 명칭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편제에 따라 2개의 마을이 합쳐지면서 양쪽의 지명 중 한글자씩 따서 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보다 작은 마을 단위는 지역의 지형적 특성, 특별한 시설물 등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던 것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