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까지는 복층건물도 많았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 건축되었던 황룡사 9층 목탑(고려 고종 25년 몽골 칩입 때 화재로 소실)을 건축했던 것만 보아도 고층으로 목조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입식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한옥도 복층의 건물도 있었습니다.
온돌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조선시대 경신대기근이라는 재난 이후로 본격적으로 온돌이 보급되었습니다. 대부분 목조건물을 토대로 한 것이 대부부이었기에 온돌은 1층에 자리하게 되었고, 지금의 보일러 시스템 기술수준이 아니었기에 2층가지 온돌을 놓기는 어려워 단층 위주였고, 복층이 있더라도 1층은 생활공간 2층, 3층은 서고 또는 창고 형태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기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죠. 궁궐에도 경회루의 경우 지금의 필로티 방식으로 1층은 기둥으로만 되었고 2층이 연회를 할 수 있는 자리로 되어있었던 것을 보면 고층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은 있었다고 보입니다. 온돌의 사용과 그 생활의 고착화로 점차적으로 복층의 한옥 등은 사라지게 되었다 추측됩니다. 서민들의 초가집은 구조상 복층 자체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까지는 황제국가이었고, 조선시대는 성리학자들의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로 명나라를 대국으로 인정하는 외교를 펼쳤기에 궁궐도 명나라보다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에 민가들도 궁궐보다는 낮고, 작게 지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것은 복층의 한옥이 조선말기~일제강점기에도 남아있었기에 그 이유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궁궐은 상징적인 건물이니 그랬다 해도 민가는 복층 건물이 존재했으니까요.
현재는 보일러 기술이 발달하여 최근에 지은 한옥촌의 한옥들은 2층 이상으로 지어지는 곳도 많이 보입니다. 한옥의 기술과 우리나라 온돌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더 높고 멋진 한옥들이 많이 지어졌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