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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
사일러스23.04.13

삼국시대~조선 시대에는 복층 건물은 없었나요?

사극을 보면서 궁금한게, 건축물들이 다 1층이고,

간혹 높이를 조금 높인 정자에서 술판벌이는 장면을 본적은 있는데,

복층 건물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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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건축술은 이미 삼국시대 신라에서 아시아 최대높이의 황룡사지 구층목탑을 지을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고려시대에도 복층건물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로 오면서부터 높은 건물은 없습니다.

    명나라의 제후국으로 위치가 바뀐 조선은 조선의 성벽높이부터 망루, 고층의 탑과 복층건물, 심지어 궁궐의 방칸수까지 명나라의 제한을 받게 되어 이층짜리 주막하나 없는 단층건물만 즐비하게 되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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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2층 가옥이 흔했다. 이는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세종대왕이 침실로 쓰는 2층 이상의 집을 의미하는 침루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으며 심지어 2층에서 잠자다가 세종대왕이 감기에 걸렸다는 기록 또한 존재한다. 고려시대로 가면 이러한 루가 보편적이었다는 기록이 많다. 2층 건물의 규모를 늘려 찻집이나 술집 등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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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까지는 복층건물도 많았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 건축되었던 황룡사 9층 목탑(고려 고종 25년 몽골 칩입 때 화재로 소실)을 건축했던 것만 보아도 고층으로 목조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입식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한옥도 복층의 건물도 있었습니다.

    온돌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조선시대 경신대기근이라는 재난 이후로 본격적으로 온돌이 보급되었습니다. 대부분 목조건물을 토대로 한 것이 대부부이었기에 온돌은 1층에 자리하게 되었고, 지금의 보일러 시스템 기술수준이 아니었기에 2층가지 온돌을 놓기는 어려워 단층 위주였고, 복층이 있더라도 1층은 생활공간 2층, 3층은 서고 또는 창고 형태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기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죠. 궁궐에도 경회루의 경우 지금의 필로티 방식으로 1층은 기둥으로만 되었고 2층이 연회를 할 수 있는 자리로 되어있었던 것을 보면 고층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은 있었다고 보입니다. 온돌의 사용과 그 생활의 고착화로 점차적으로 복층의 한옥 등은 사라지게 되었다 추측됩니다. 서민들의 초가집은 구조상 복층 자체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까지는 황제국가이었고, 조선시대는 성리학자들의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로 명나라를 대국으로 인정하는 외교를 펼쳤기에 궁궐도 명나라보다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에 민가들도 궁궐보다는 낮고, 작게 지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것은 복층의 한옥이 조선말기~일제강점기에도 남아있었기에 그 이유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궁궐은 상징적인 건물이니 그랬다 해도 민가는 복층 건물이 존재했으니까요.

    현재는 보일러 기술이 발달하여 최근에 지은 한옥촌의 한옥들은 2층 이상으로 지어지는 곳도 많이 보입니다. 한옥의 기술과 우리나라 온돌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더 높고 멋진 한옥들이 많이 지어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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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수루는 조선 후기 숙종 19년에 지어진 2층 누각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82호에 지정되었다가 2009년 다시 중요 민속자료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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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수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복층건물은 있었습니다.

    황룡사 9층목탑이나 법주사 팔상전 같이 불교 건물, 성곽 방어시설로서의 누각 등 복층 건물이 있었습니다. 내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시내를 감상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다만 현대적 주거용 건물로서의 복층 건물은 아닙니다.

    복층건물의 부재는 건축 기술적 제약이 있어서입니다. 적심(주춧돌같은 바닥구조)과 기둥이 지붕구조와 기와를 받치기에도 버겁기 때문에 2층으로 만들려면 더 많은 기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공간활용에 있어서 효율성이 떨어져 1층을 사용할 수 없게됩니다.

    조선시대부터는 건물 높이에 대한 구체적 제한이 생깁니다. 건물이 곧 권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나 누각 등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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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경회루와 같은 루는 2층구조입니다. 그리고 신라시대에도 9층 목탑 같은 것도 있었지요. 다만 고층 건물구조가 적은이유는 온돌문화와 관계가 있을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온돌을 이용하면 위층으로 가면 갈수록 온기가 없어 지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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