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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강경원 전문가
부산진구남성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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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자 조선이라는게 뭔가요? 고조선이랑 다른건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자가 고조선 지역에 책봉받아 세웠다고 전해지던 왕조. '후조선'(後朝鮮)이라고도 했다. 고조선이 사라진 이후, 삼국시대부터 19세기까지 기자조선은 사실로 믿어졌지만 현대에 발달한 연구 방법이 도입된 이래로 기자조선은 고고학적 발굴과 배치되어 국내 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 한국인들도 단군은 알지만 기자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여기서 실존 불인정은 정확히 말하자면 '기자 동래설 or 기자 피봉설'을 말하는 것이다. 위만 이전에 있었던 고조선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자조선이 아닌 토착계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한국의 역사학계는 를 실증적으로는 부정하지만 역시 위만 이전에 있었던 토착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또 이와 관련하여 위만이 찬탈하기 이전 고조선의 부왕과 준왕의 조선을 단군조선 내지는 단군조선이 아니더라도 위만 이전에 존재했던 토착 고조선 왕계로 봐야 할 지, 기자조선의 후반부로 봐야 할 지에 대한 소소한 논란이 있는데 어차피 단군이든 기자든 실증적으로 논하긴 어려운지라 그리 큰 의미는 없다. 쉽게 말해 단군조선/기자조선을 구체적으로 따지기엔 둘 다 확증할 만한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니 그냥 고조선으로 퉁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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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술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명증이 존재하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런거ㅠ없습니다. ㅋㅋ 자격증이 있다고 월급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더 실력이 있는것도 아니지요... 그저 그 사람 옆에가면 예술가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예술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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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태의감이라는 곳은 뭐하는 곳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목종 때 관원으로 태의감(太醫監)·소감(少監)·승(丞)·박사·의정(醫正)이 있었다.문종 때 판사(判事) 1인(종3품), 감 1인(정4품), 소감 2인(종5품), 박사 2인(종8품), 승 2인(종8품), 의정 2인(종9품), 조교 1인(종9품), 주금박사(呪噤博士) 1인(종9품)을 두고, 이밖에 서리직으로 의침사(醫針史) 1인, 주약(注藥) 2인, 약동(藥童) 2인, 주금공(呪噤工) 2인이 있었다.1308년(충렬왕 34)사의서(司醫署)라 고치고 동시에 관원으로 제점(提點) 2인(겸관으로 정3품), 영(令) 1인(정3품), 정(正) 1인(종3품), 승 1인(종5품), 낭(郎) 1인(종6품), 직장(直長) 1인(종7품), 박사 2인(종8품), 검약(檢藥) 2인(정9품), 조교 2인(종9품)을 두었다. 그 뒤 다시 전의시(典醫寺)라 고치고 제점을 없애고 영을 판사, 낭을 주부(注簿)라고 하였다.1356년(공민왕 5) 7월 다시 이름을 태의감이라 고치고 정(正)을 개정하여 감·부정(副正)을 소감이라 하고 검약을 없앴으나, 1362년 3월 다시 전의시라 개칭하고 감을 정, 소감을 부정이라 하고 다시 검약을 두었다. 1369년 또다시 태의감이라 칭하고, 또 정·부정을 감·소감이라 하고, 1372년 다시 전의시라 칭하고 정·부정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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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류의 역사에서 국가간의 전쟁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류도 동물과 같아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범주안에 있다고 볼수 있지요!^^어쩔수 없이 살아남으려는 뺏고 빼앗기는 싸움의 연속이라고 볼수있습니다.지금도 줄타기를 하고 있지요.... 걱정됩니다. 3차대전이 터질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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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 시대 토관제도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토관 제도는 원의 직속령이었다가 다시 고려에 수복된 지방을 통치하면서 비롯되었다. 원은 점령한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그 지방 세력을 포섭해 통치했으며, 이를 수복한 고려도 지방 세력의 효율적인 조종을 위해 토관을 설치하여 지방 사회를 운영했다. 즉 새로 확보된 지역의 유력한 지방민을 통해 지방 지배를 꾀하는 동시에, 그 지방 민호를 군호로 편성해서 유사시에 군사적 요층지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토관 제도는 조선에 들어와서도 계속 시행되었다. 함경도에는 1416년(태종 16) 이전 함흥에 토관이 설치되었다. 세종 때는 북방 지역에 대한 개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그곳에 대한 통치 방식의 하나로 토관 제도를 확대 시행했다. 토관은 국가에 봉사한 대가로 지록이라는 토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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