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십만양병설이 무시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십만양병설을 무시하기보다는 준비가 미흡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십만양병설은 조선 선조 16년(1583)에, 이이가 임금에게 바친 ≪시무육조≫ 가운데 하나로, 십만 명의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개혁안입니다. 120여 년간 분열되어 있던 일본이 통일되었고, 머지않아 조선을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 이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두 사신의 의견이 달라 조정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높으니 서둘러 전쟁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김성일은 침략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이에 반대하였습니다. 토론은 큰 성과 없이 끝났고, 조정에서는 급한 대로 몇 가지만 준비한 채 한 해를 보냈습니다.1년 뒤 조총을 비롯한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였다.(1592, 임진왜란) 20만이 넘는 대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