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라진 고대도시 페트라는 어떤곳이었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페트라는 요르단 강 고슴도치 협곡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시대부터 중요한 상업 및 정치 중심지였습니다. 페트라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암석으로 만들어진 도시로 유명하며,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인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기원전 4세기에는 나바불루크 왕조의 수도로 사용되었으며, 기원후 2세기에는 로마 제국에 의해 정치적으로 통제됐습니다. 이후 7세기에는 이슬람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페트라는 중요한 이슬람 거점지가 되었습니다.하지만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페트라는 인구와 중요성을 상실하였으며, 1812년에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돌프 버크하르트가 "장미 도시"로 불리는 페트라의 유적을 발견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대규모의 관광지로서 유명하며, 198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Q. 제갈량의 위나라 북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였을까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촉의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에 대한 북벌을 시도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벌의 성패가 제갈량의 능력뿐 아니라 많은 다른 요인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능성을 단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제갈량이 위나라에 대한 북벌을 시도한 배경으로는 위나라의 엄청난 부와 산물, 그리고 제갈량이 이를 차지하기 위한 야심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은 촉과 연합하여 위나라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위나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공격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또한, 촉의 쇠퇴를 제갈량이 빨리 당긴 것은 사실입니다. 제갈량은 촉과의 연합을 통해 위나라를 공격함으로써 촉의 군사력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결과 위나라의 국력이 약화되면서, 촉은 이를 기회로 하여 대군을 보내 경기 지방을 정복하였습니다. 이후 촉은 고구려와 연합하여 위나라에 대한 전면전을 펼치고, 최종적으로 위나라를 정복하게 되었습니다.따라서, 제갈량의 북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였는지는 애매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갈량의 북벌은 촉의 쇠퇴를 빨리 당기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조선 시대 이전의 회화 작품이 남아 있는 게 있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이전의 한국 회화는 고구려, 백제, 신라, 국제시대 등에 진행되었던 회화를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지금은 없거나 파편화되어 보존되어 있어 정확한 정보나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고구려 시대의 회화로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작품은 없지만, 고구려 도자기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백제 시대의 회화로는 백제벽화와 삼국유사 등이 있으며, 신라 시대의 회화로는 불상에 그림이 그려진 석조불 등이 있습니다.이러한 작품들이 사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당시 한국은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귀중한 작품들이 침몰, 도난, 약탈 등으로 분실되었습니다. 셋째, 전통적인 회화 기법이 퇴보하면서, 이전의 작품들도 점차 잊혀져 갔습니다.하지만 최근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회화 작품을 조사, 복원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전의 작품들을 복원하고, 보존하는데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습니다.
Q. 간담상조라는 고사성어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디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간담상조(肝膽相照)란 고사성어 중 하나로, 서로의 마음을 열어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이가 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표현의 유래는 중국의 역사서 '왕조연대총요(王朝綱要)'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는 왕조의 건국자와 재상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이 중에서 후한(侯漢)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후한은 무신(武臣)이었던 당시 군사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라의 재상들은 그를 무서워하며 서로 경쟁하고 눈치보기만 하던 상황에서 후한만큼은 재상들과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후한은 재상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면서 그들과의 협력을 유지하고자,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이죠.이를 바탕으로 '간담(肝膽)'은 마음을 나타내고, '상조(相照)'는 서로 비추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간담상조라는 표현은 마음을 열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사이가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Q. 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 같은 날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화이트데이와 발렌타인데이는 모두 연인끼리 사랑을 나누는 날로 유명한데요. 발렌타인데이는 2월 14일에, 화이트데이는 3월 14일에 기념됩니다. 이 두 날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발렌타인데이의 유래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는 로마 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에는 2월 15일에 로마 신들의 축제인 루페르칼리아(Lupercalia)가 열렸는데, 이 축제에서는 신성한 로물스(Romulus)와 레무스(Remus)의 양친, 이저스(Lupa)를 모신 신전에서 젊은 남녀들이 모여 서로에게 쪽지를 주고받아 사랑을 표현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설과 로마 정치인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이야기가 섞여 발렌타인데이가 유래되었다고도 합니다.발렌티누스는 3세기 로마 시대의 기독교 성인으로,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학살하는 가운데 밀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며 숨졌습니다. 그러던 중 기적을 일으킨 발렌티누스는 수감되어 처형됐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발렌타인데이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화이트데이의 유래 화이트데이는 일본에서 생긴 문화로, 발렌타인데이에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습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에 받은 초콜릿을 기념하며, 남성들은 3월 14일인 화이트데이에 여성들에게 선물을 보답합니다. 화이트데이라는 이름은 하얀색으로 꾸며진 선물을 주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초백색 마시멜로우, 화이트 초콜릿, 화이트 캔디 등이 대표적인 화이트데이 선물입니다.
Q. 세종대왕은 음악에도 관심이 많으셨다고 하던데 어떤 업적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세종대왕은 음악 분야에서도 많은 관심과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야연악(夜宴樂)'의 창안과 조선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것입니다.세종대왕은 야왕(夜王)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밤에 나와 밝은 빛을 내는 성격에서 비롯된 별명입니다. 그래서 그는 야왕으로서 밤의 문화를 중요시하며, 밤에는 문화 예술과 학문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를 취했습니다.그 중에서도 '야연악'은 밤의 문화 중에서도 음악에 대한 세종대왕의 관심과 애정이 높았음을 보여줍니다. 야연악은 밤에 집무를 마치고 공무원들과 음악을 즐기는 자리였는데, 세종대왕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악기를 연주하고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면서 참가하였습니다.또한, 세종대왕은 음악 관련 기관인 '영조원(應肇院)'을 창설하여 음악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세종대왕은 음악 분야에서도 조선 예술의 발전과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세종대왕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음악 관련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조선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세종대왕은 한국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Q. 미술관이 처음으로 생긴 곳이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미술관이 처음 생긴 곳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이미 예술작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 현대적인 미술관의 개념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럽에서 예술작품을 공개적으로 전시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미술관이 개설되기 시작했습니다.미술관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어지는 세계적인 미술전시회와 박람회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889년 세계 박람회에서는 에펠 탑과 함께 그랑 팔레(Grand Palais)라는 대규모 전시장이 건립되어 다양한 예술작품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후 20세기 초반에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이 창설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Q. 왜 마이너 음악은 어두운 느낌이 나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메이저(major)와 마이너(minor)는 음악의 조성에 따른 음악적 키(key)를 나타내며, 이는 음악적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메이저 키는 보통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며, 마이너 키는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의 차이는 음악적인 구조적 특징에서 비롯됩니다.메이저 키의 음계는 다장조와 도장조가 대표적입니다. 이 음계는 밝고 활기차며, 다양한 조횡으로 전환되기 쉬워서 음악적인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루어집니다.반면 마이너 키의 음계는 육장조와 라장조가 대표적입니다. 이 음계는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주며, 음악적 움직임이 조금 더 긴장감 있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마이너 키에서 조횡을 전환할 때 더 긴장감 있게 이루어지며, 또한 마이너 키의 화음은 보통 다양한 효과음과 조화되어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따라서 음악적 구조에서 메이저와 마이너는 서로 다른 분위기를 나타내며, 이는 음악이 전달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크게 좌우합니다.
Q. 살면서 꼭 가봐야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어딘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세계 각지에는 아름다운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이 있습니다. 아래는 몇 가지 추천해드릴 만한 미술관과 박물관입니다.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대영박물관 (영국, 런던)에르미타주 박물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바티칸 박물관 (이탈리아, 로마)프라도 박물관 (스페인, 마드리드)국립중앙박물관 (한국, 서울)도쿄 국립박물관 (일본, 도쿄)미술관 아일랜드 (미국,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뉴욕)미국 국립공기청사 (미국, 워싱턴 D.C.)위의 목록은 일부이며, 세계 각국에는 더욱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Q. 조선시대에 남자측의 과실로 인한 이혼이 가능하였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있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에서의 과실은 대개 남성 측의 문제로 인식되어왔습니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에게 이혼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그 과정도 매우 어려웠습니다.조선시대에는 이혼 절차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혼은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하며, 이유가 증명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을 이혼하려면, 그녀의 남편이 극도의 과실을 범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외도를 하거나 가족 재산을 낭비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또한, 여성이 이혼을 요청할 때는 그녀의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함께 나서서 지지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았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 이혼 절차를 처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이혼 절차는 대개 민사적인 문제였으며, 형벌적인 요소는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남성이 결혼생활에서의 과실을 범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하더라도, 그에 대한 벌은 크게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