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 최초의 교역? 무역은 언제부터?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다음의 내용이 존재합니다.교역의 기원은 선사시대인 원시공동체사회 초기까지 소급해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원시사회 조직은 씨족공동체사회에서 부족공동체사회로 계기적인 발전과정을 거쳐왔으며, 특히 씨족공동체사회 초기에는 난혼형태의 가족제도에서 혈연집단이 모계씨족공동체를 형성하고, 수렵과 어로 및 채집 등의 생산활동을 하면서 유랑생활을 이어왔다.그리고 이들 초기의 씨족공동체는 그들이 획득한 생산물 중에서 쓰고 남은 잉여물이 생기면, 이를 다른 공동체의 잉여물과 교환하기 위하여 주변의 다른 공동체가 발견하기 쉬운 곳에 그들의 잉여물을 가져다 놓고 무언의 교역을 기다렸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교역을 침묵교환(silent trade)이라 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교역형태이며 원초적인 사회적 분업이기도 하였다.그러나 우리 민족의 대외 교역활동이 『진서 晉書』 및 『삼국지』 등 중국측의 고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금속문화의 유입으로 생산력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진 부족연맹체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무역(貿易))]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9151
Q. 클리셰 덩어리다 라는 말을 쓰잖아요, 클리셰가 무슨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클리셰는 '구시대적 생각 또는 못 쓴 글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너무 뻔하고 진부한 생각, 표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뻔한 전개' 등을 생각하시면 되는데,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습니다.클리셰는 남용의 결과, 의도된 힘이나 새로움이 없어진 진부한 상투구, 상투어·표현·개념을 가리키며 상황, 줄거리의 기법, 주제, 성격 묘사, 수사법 등 흔히 있던 것이 되어 버린 대상에도 적용된다. 부정적인 문맥으로 사용되는 것이 많다.
Q. 음악 저작권은 사후 몇년까지 인정해주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저작권법과 관련하여 아래의 내용을 안내드립니다.※ 2013년 7월 1일부터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이 저작자 사망 또는 공표일로부터 50년에서 70년으로 상향조정되어 시행되었으나 2013년 7월 1일 이전에 저작권 보호기간이 소멸한 저작물에 대하여는 70년으로 연장된 보호기간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저작권법」 부칙(법률 10807호, 2011. 6. 30.) 제2조].※ 즉, 1962년 12월 31일 이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종전과 같이 사후 50년까지 보호되는 반면, 1963년 1월 1일 이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개정 저작권법(법률 10807호)에 따라 사후 70년까지 보호됩니다[「2013년 하반기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2013. 6. 28.), 기획재정부, 107면].https://easylaw.go.kr/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705&ccfNo=2&cciNo=3&cnpClsNo=2
Q. 터키는 왜 형제의 나라라고 말하는가?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무래도 6.25 참전의 영향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물론 알려지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와 터키의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이 계기입니다.또한 기사에 따르면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터키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처럼 한국과 터키가 돈독한 관계에 있게 된 배경에는 6.25 참전 이후에도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1999년 8월에 터키 서부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만8천 명이 죽고 20만 명의 이재민이 생기는 엄청난 재난이 발생했다. 이때 한국에서 민간인 중심으로 터키를 돕자는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40일 동안 23억 원이 모금되었다. 당시 터키 방송국 STV는 한국에서 펼쳐지는 모금 운동을 일주일 동안 다큐멘터리로 촬영한 뒤, 50분 동안 터키 전역에 방송하였다. 이 방송을 본 터키 국민은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둘째는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터키를 응원한 것이다. 그 당시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다”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또한,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한국 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 국민의 관심이 증폭되어 경기장에서 터키팀을 열렬히 응원하였다.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이 열리던 대구 경기장에 자기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때 터키팀이 3:2로 이겨서 월드컵 축구 3위를 차지하였다.)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24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