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과거 베트남 전쟁은 왜 발생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진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베트남전쟁의 결정적 계기는 1964년 8월에 일어난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이다. 이 사건은 통킹만 해상에서 북베트남 해군과 미 해군이 교전한 사건이다. 1971년 미국방부 펜타곤 보고서에 의해 이 전투가 미국 측이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1965년 2월부터는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이 시작되면서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1965년에 미국, 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지상군을 파병하였고, 이후 8년간의 전쟁이 진행되었다.
Q. 아기들이 탄생하고 난후 1년때에 하는 돌잔치의 유래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진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 래아기가 태어난 집은 금줄이라고 하여 남아일 경우에는 고추·짚·숯을, 여아일 경우 짚·숯·종이 또는 솔잎을 왼새끼로 꼬아 대문에 달고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태어난 아기를 위한 의례는 여러가지가 있어, 먼저 태어난 지 7일째 되는 날을 '한이레' 또는 '첫이레'라고 했다. 이때는 쌀깃(강보라고도 함)을 벗기고 깃 없는 옷을 입히며 움직이지 못하게 동여맸던 팔 하나를 풀어 놓았다. 그 뒤 다시 일주일이 지나면 깃 있는 옷에 두렁이를 입히고 나머지 팔 하나를 풀어 놓았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면 비로소 아래위의 옷을 맞추어 입히고, 그 동안의 금기가 풀리면서 금줄을 거두고 이웃이나 친척들이 아기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이레가 지난 다음 아기에게 가장 큰 의례는 역시 백일이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고 계절(季節)마다 현저한 기온의 변화와 알지못하는 병으로 인하여 영유아의 사망률이 대단히 높았던 옛날에는 백일안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곧 백일이다. 백일에는 친척과 이웃 등 손님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접대하였고, 손님들은 명(목숨)이 길라고 실이나 옷을 가져와 축하해 주었다. 다음으로 큰 의례는 아기가 태어난 지 1주년 되는 날인 돌이다. 이제야 비로서 가족의 한 성원으로 인정을 하는 돌잔치는 예부터 관습처럼 행해지는 축하행사로, 왕실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멀고 가까운 친척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고 손님들은 여러가지 선물을 가져와 아기의 장래가 잘되기를 축하해 주었다. 이날에는 '돌떡'이라하여 백설기나 수수팥떡을 만들어서 손님은 물론 이웃에게도 돌리는데, 많은 사람이 나눠먹어야 아기에게 좋다고 여겼으며, 떡을 받은 집에서는 빈 접시를 보내지 않고 실, 의복, 돈, 반지 등의 선물을 접시에 담아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돌에 대한 행사는 중국·일본에서도 고대부터 있어 왔으며 한국에는 『국조보감(國朝寶鑑)』정조15년 6월조에 궁중에서 돌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수광의『지봉유설(芝峰類設)』인사부(人事部) 생산편(生産篇)에는 중국의 『안씨가훈(顔氏家訓)』을 인용하여 한국의 돌잔치 풍습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또한 경축행사로서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행하여진 것으로 알려진다 의 미아이가 태어난 지 만1년이 되는 첫 생일을 돌이라고 한다. 돌은 유아기 때 아기 나이를 셈하는 단위로 첫돌, 두 돌, 세 돌.. 등으로 쓰이기 한다. 돌은 초도일(初度日) 또는 수일(磎日)이라고도 하며, 돌잔치는 예로부터 행해져 오는 경축행사로,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에 1년을 고비로 인생에 있어서 첫 고비를 넘긴 재생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아이를 적게 낳아 정성들여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다시 돌잔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돌이란 아이가 1년 24절기를 처음으로 한바퀴 돌았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 부모라면 누구나 건강하게 자란 내 아이를 친지들과 더불어 축하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하지만 요즘 신세대 부모들은 어른들과 떨어져 살기 때문에 돌잔치를 어떻게 할지 막막하고, 맞벌이 등으로 시간에 쫓기느라 충분한 준비없이 친지를 초대했다가 예상치 않은 실수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