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비류라는 사람은 자살했다고 하던데 도시의 자랑거리가 되는게 맞나요?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찾아보는데 내용은 많이 없네요..겨우 찾았습니다.^^비류는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여명왕이 죽은 후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나, 고구려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비류는 고구려에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삶과 업적은 고구려 후기의 정치, 문화, 군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현재, 비류는 고구려의 유물 중 하나인 비류방직이라는 실물로 그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류방직은 대한민국의 보물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자살 여부를 떠나서 그의 업적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이상입니다.^^
Q. 이순신과 원균 과연 앙숙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이순신과 원균은 조선 시대의 유명한 장군으로, 함께 전쟁에서 싸웠던 적은 없지만 둘 다 조선의 군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원균은 이순신의 후임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한양의 안전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큰 업적을 내지 못하고, 1597년 이순신이 돌아와서 원균은 다시 이전 직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원균은 이순신과 함께 다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으며, 이순신과 관계가 나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사실, 이순신은 원균을 대우할 때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 그를 존경하였습니다.원균은 이순신과 달리 군사적인 업적은 크게 없지만, 그는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역사 서적이나 선조를 기리는 제례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업적으로는 "경국대전"(경국이야기)이나 "병자호랑이전"(호랑이 이야기) 등의 문학작품, 그리고 조선시대 대표적인 선조공덕집인 "행안부록"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