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소서노는 아들인 비류, 온조와 같이 남쪽으로 내려갔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 19년 4월에 부여에서 아내 예씨가 낳은 친아들 유리가 찾아오자 동명성왕의 태도가 급변하여 유리를 후계자로 정하려 하였다.하루아침에 차기 왕위를 굴러온 돌에게 빼앗기고 언제 버림받을지 모를 신세가 된 비류와 온조는 절망에 빠졌다. 게다가 그 해에 동명성왕이 죽으니 소서노, 비류, 온조 등은 더이상 고구려에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힘들게 되었다.비류와 온조는 결국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두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후 형인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동생인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해 나라를 세운다.
Q.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조선총독부의 주 역할을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정무를 총괄, 내각총리대신을 경유하여 천황에게 상주, 재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 내의 육군과 해군의 통수권을 가지고 위임에 따라서 총독부령 및 명령, 그에 추가하는 벌칙을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Q. 조선시대에 편지 같은 것들은 어떻게 전달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편지는 주로 인편(人便)으로 전했다. 인편이 닿지 않으면 편지를 써두고 기다렸고, 일정과 행선지가 맞는 사람을 찾으면 밀린 편지를 한꺼번에 써서 전했다. 품삯을 받고 편지 배달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전문 배달꾼도 있었다. 이들은 전인, 전족(專足), 전팽(專K)이라고 불렸다. 전인은 그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필요했다. 주소가 없던 시대에 사는 곳과 이름만 듣고 편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수취인이 사는 곳 지리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어야 했다. 물어물어 수취인을 찾아야 하니 말귀도 밝아야 했고, 먼 길을 일정에 맞춰 다녀갈 빠른 발걸음도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