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진시황의 진나라는 왜 그리 빨리 멸망한 것입니까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황제가 죽고난 이후 진나라는 이세황제 호해, 진왕 자영을 끝으로 통일왕조로서 15년 만에 단명한다. 중국사상 최초의 통일 왕조임과 동시에 가장 단명한 통일 왕조기도 하다. 진왕(자영)은 황제(칭호)를 포기했기 때문에 진 황제는 2대에 끝나고, 진은 제후국으로 내려앉았다.시황제가 흉노를 막고자 만리장성의 축조에 들어갔고, 자기 무덤을 짓고, 도로를 만드는 등 거대하고 무리한 토목 공사를 일으켜 민심을 잃고 말았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가 장남 부소를 제치고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는데, 조고는 황제의 권위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벌였고 호해는 조고에게 정사를 맡기고 자신은 유흥에 빠지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민생을 도탄에 빠트렸다.결국 기원전 209년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켜 장초라는 나라를 세웠다. 진승의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진나라 전역을 장악했고 진승의 부하들에 의해 육국이 부활했으며 심지어 주문이 이끄는 무리가 함곡관 앞까지 진군하기도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소부 장한이 나서 주문의 군대를 쳐부수고 장초를 짓밟은 뒤 되살아난 육국을 하나하나 제압했지만 그마저도 초나라의 장군 항우에 의해 막혔다. 장한의 군대는 기원전 207년 거록대전에서 항우에게 패배했고, 장한은 은허에서 항우에 항복했다.한편 진군이 항우에 박살나고 있을 때 역시 초나라의 장수였던 유방이 이끄는 군대가 함양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르던 호해는 모반을 꾀한 조고에 의해 시해당했고, 조고는 인망이 두터운 자영을 옹립했지만 자영은 조고와 그 일족을 멸문시켜버렸다. 하지만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고 자영은 기원전 206년 유방에 전국옥새를 바치며 항복했다. 유방은 자영의 항복을 받아주고 주위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으며, 진나라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군대를 함양 밖으로 물리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대체할 약법삼장을 반포하여 민심을 다독였다.그러나 뒤늦게 관중에 입성한 항우가 자영을 죽이고 이듬해에 수도를 불태워 진나라는 멸망했다
Q. 열차의 광고 방송등 영상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2006년쯤부터 2010년 경부고속선 2단계 개통 전까지는 출발시에 굿모닝 KTX라는 영상이 나왔습니다.그 이후 차내 통로에 설치된 모니터로 안전 관련 안내방송, 정차역 안내방송, 그리고 연합뉴스에서 제공하는 영상을 비롯하여 CJ E&M, SPOTV, STN SPORTS 등의 방송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들도 나옵니다.
Q. 조선 유학에 실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의 실학은 그 기원을 17세기 이수광과 한백겸에서 찾는다.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접했던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실학정신의 기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모습을 보였으며 한백겸의 동국지리지는 평양에 있었다는 기자의 정전 유적을 나름대로 고증하면서 토지개혁론의 시작을 열었다.그렇게 싹이 보인 조선의 실학이 본격화 된 것은 이후의 고증학과 서양학문에 대한 관심,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병자호란으로 대표되는 외부 충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18세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는 유형원, 이익,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서유구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서울에 주로 거주하던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이 특히 관심을 보인 학문은 북학론이다. 이 북학론이 청나라를 배우자는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청나라에 남아 있는 중화 문명을 배우자는 사조로서, 북벌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이 조선 후기의 실학에 대한 관심은 조선에 천주교가 전래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실학자들이 청나라에서 실학 관련 책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천주교에 대한 책이 같이 들어왔다. 최초로 천주교의 존재를 소개한 것이 이수광의 지봉유설이었을 정도이며, 이후 이익과 그 제자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 실학자들은 이것을 처음에는 서학, 또는 천주학이라 부르면서 학문으로 연구하다가 이게 서양의 종교라는 것을 깨닫고 천주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실학의 전개는 크게 3기로 나누는데, 1기인 18세기 전반은 실학의 발생기로 중농학파가, 2기인 후반은 실학의 정립기로 중상학파가, 3기인 19세기 초반은 실학의 전성기로 국학파가 대두했다.이후 실학은 개화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Q. 빈지노의 노래 중에 살바도르 달리인가 그런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에서 언급되는 살바도르 달리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그 생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살바도로 달리(Salvatore Dali)"는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혼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달리는 1904년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의 푸이골(Pubol)에서 태어났습니다. 1922년 마드리드의 산텔모(San Fernando) 예술학교에 입학해 회화를 공부했으며, 후에 파리로 이동하여 초현실주의 예술을 추구하는 아르데코(art deco) 운동에 참여했습니다.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들어내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지중해의 기억", "세레나데", "양치기 소녀의 첫 키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