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에 대하여 질문드려요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90년 6월 12일 ~ 1918년 10월 31일오스트리아 툴른출생. 빈에서 사망. 클림트의 친구이자 후견인으로 표현주의적인 선들을 더욱 발전시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고,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주제로 다룸으로써, 20세기 초 빈에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킵니다. 빈 공간을 배경으로 툭툭 튀어나온 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르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한 실레의 자화상은 고뇌하는 인간의 실존주의적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레의 도시 풍경화들은 역동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파로 넘쳐나는 도시 모습의 이면에는 어떤 긴장감이 감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을 지니고 실레가 그린 장인의 초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그린 초상화들은 감정이입의 표현이 강조되어 표현주의적 드로잉이 주로 많습니다. 실레는 16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만, 그곳의 교육이 진부하여 그만두고 몇 친구들과 함께 '신미술가협회'를 창립합니다. 그 후 여인들과 소녀들의 누드화를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드로잉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이 드로잉들은 실레가 크루마우로 이주한 후인 1911년에 문제가 됩니다. 그는 모델이자 동거녀었던 발레리 '발리' 노이칠과의 자유분방한 생활과 미성년자들을 모델로 그린 그림들 때문에 크루마우에서 추방당합니다. 1912년 실레는 그곳에서 어린 모델들을 데려다가 부도덕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죄목으로 잠시 동안 유치장에 가게됩니다. 실레는 빈 분리파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해에 사망한 클림트의 자리를 이어받게됩니다. 1918년 이 시기에 그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아버지가 된다는 기대감으로 작품 가족을 완성합니다. 새롭게 발견한 희망을 보여주는 듯한 이 작품에서 실레와 아내, 아이는 모두 나체로 묘사되어 있으며 특히 인물들의 행복한 표정을 하고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실레의 아내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고 슬퍼하던 실레도 스페인 독감으로 3일 뒤에 세상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