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홈답변 활동잉크

안녕하세요. 이명훈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명훈 전문가입니다.

이명훈 전문가
EBS
Q.  동지가 12월 22일이나 23일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로서, 태양 황경이 270도가 되는 때이다. 대개 팥죽을 먹는다. 양력에서는 12월 21일 또는 22일입니다.음력에서는 동지가 드는 달을 11월(동짓달)로 한다. 대설과 소한 사이에 들며, 태양이 남회귀선, 곧 적도 이남 23.5°인 동지선에 이르는 때이다. 이때 태양은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데, 대한민국, 독일 등과 같은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며, 남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 추위는 대략 이 무렵부터 강력해지기 시작한다.
Q.  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만 년전 쯤 매머드와 검치호가 살던 혹독한 빙하기 그때도 호기심이 많은 이들은 신대륙을 향해서 갔습니다.동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유럽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까지 아메리카 땅에 처음으로 땅을 밟은 사람들은 포유류를 쫓던 사냥꾼이었습니다.간빙기가 도래하면서 땅들이 물에 잠기고 신대륙을 감싸던 빙하산들은 녹아서 새로운 땅들이 생겼죠알래스카에서 남하하는 많은 인류가 생겼고 남아메리카 남부까지 도달하게 됩니다.사냥감이 줄어들고 따라온 이들은 농사법을 개발하면서 많은 이들이 정착을 하게 됩니다. 인류의 뿌리는 같지만 이동과 기후변화가 대륙들을 갈라놓았죠!그리고 유럽인들이 태평양을 통해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식민지 건설을 통해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 했습니다.
Q.  조선 후기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급진 개화파가 지향했던 개혁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급진 개화파는 정강 14조와 새 인사를 발표했다.1. 청에 잡혀 간 흥선대원군을 곧 돌아오게 하며, 종래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3.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4. 내시부를 폐지하고 그중에 재능 있는 자만을 등용한다.5. 전후 간사한 관리와 탐관오리 가운데 현저한 자를 처벌한다.6.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7. 규장각을 폐지한다.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방지한다.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10.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와 옥에 갇혀 있는 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적당히 형을 감한다.11.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통할한다.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14. 정부 6조 외에 불필요한 관청을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이것을 심의 처리하도록 한다.흥선대원군 계열과도 일부 교섭하여 영의정에 이재원, 병조판서에 이재완, 평안도관찰사에 이재순 등 종친을 임명함과 동시에 대원군의 장남 이재면을 의정부좌찬성 겸 우참찬에 임명했다.그러나 핵심 요직은 급진 개화파였다. 우의정에 홍영식·형조판서에 윤웅렬·전후양영사(前後兩營使) 겸 좌포도대장에 박영효·이조판서 겸 홍문관제학에 신기선(申箕善)·좌우 양영사 겸 우포도대장 및 서리 외무 독판에 서광범·외무 아문 참의에 윤치호, 승정원 도승지에는 박영교 등이 임명되었다. 갑신정변의 전위대로 나서 공을 세운 서재필은 병조 참판 겸 정령관으로 임명하여 정부의 군사권과 재정권을 장악하였다. 헌종의 계비 효정 왕후의 조카이며 동시에 홍영식의 집안사람인 홍순형도 공조판서로 임명되었다. 그 밖에 온건 개화파로 정변에 반대하지 않던 김홍집을 한성부 판윤으로, 김윤식을 예조판서로 임명하였다.김옥균은 호조 참판이 되어 국가의 재정을 책임졌다. 급진 개화파들은 각국에게 신 정부의 수립을 통고하는 한편, 신 정부를 구성하고 혁신정강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14개 항목을 내세웠다. 그중의 첫 대목은 청나라와의 종주 관계를 폐지하고 대원군을 귀국시킨다는 대목이었다. 그 외에는 문벌 개혁(신분제 철폐), 환곡 폐지, 의정부와 6조, 특히 호조 중심의 재정 관할, 규장각 폐지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Q.  옵아트는 어떤 특징을 가진 미술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옵아트는 팝아트의 상업주의와 지나친 상징성에 대한 반동적 성격으로 탄생되었다. 옵아트라는 용어는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회‘감응하는 눈(The Responsive Eye)’ 이후 《타임》지에 처음 쓰였다. 이 전시회 출품작들은 평행선이나 바둑판 무늬, 동심원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의 화면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명도가 같은 보색을 병렬시켜 색채의 긴장상태를 유발했다. 그 결과 관람자는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고 한 부분을 오래 바라볼 수 없게 된다.옵아트의 한 작가는 “색과 형의 정적인 힘을 극적인 것으로 변화시켰고 동적인 심리반응을 통해 눈의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고의 세계와는 거의 관련이 없고 오로지 시각의 착각을 유도하여 수수께끼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옵아트의 시조는 몬드리안으로 볼 수 있으나 옵아트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은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이다. 그의 대작 《직녀성》은 사각형을 형성하는 선을 구부러뜨려 거대한 서양식 장기판과도 같다. 그러나 선의 구부러뜨림은 그림 전체와 관련하여 아주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각각의 사각형은 수축과 팽창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그 크기를 조절하여 가장 큰 사각형은 가장 작은 사각형의 10배가 넘는다. 또 조제프 알버스(Josef Albers)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 사이의 미묘한 색채관계에 기초를 둔 작품을 발표했다.옵아트는 구성주의적 추상미술과는 달리 사상이나 정서와는 무관하게 원근법상의 착시나 색채의 장력(張力)을 통하여 순수한 시각상의 효과를 추구한다. 그리고 빛·색·형태를 통하여 3차원적인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나치게 지적이고 조직적이며 차가운 느낌을 준다. 때문에 옵아트는 인문과학보다는 자연과학에 더 가까운 예술이다. 옵아트는 당시 디자인계나 패션계에 영향을 끼쳤으나 사고와 정서를 배제한 계산된 예술로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Q.  최초로 피아노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초의 피아노최초의 피아노는 1700년경 이탈리아 사람 Bartolommeo Cristofori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사람은 하프시코드보다 더 감응력이 있는 건반악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실천을 해왔다. 이 새로운 악기는 Scipione Maffei라는 작가의 관심이 없었다면 그냥 무시되었을 것이다. Scipione Maffei가 Cristofori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난 후 논문이 나중에 독일어로 번역되었는데 이 논문은 Gottfried Silbermann을 고무시켜 피아노 제작을 시작했을 것이다.1760년 Silbermann의 제자였던 Johannes Zumpe는 피아노 제작기술을 잉글랜드에 갖고가서 거기서, 그는 아담한 '정방형' 피아노를 개발하였다. 피아노 제작기술의 발달은 이후 100년 동안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계속되었으며 마침내 오늘날의 근대 피아노에 이르게 되었다.최초의 피아리스트전세계 최초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피아노를 대중화 시킨 인물은 '모짜르트' 입니다.한국은 김영환 선생님피아노의 가격피아노의 가격은 700만원부터 3억원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1112131415
아하앤컴퍼니㈜
사업자 등록번호 : 144-81-25784사업자 정보확인대표자명 : 서한울
통신판매업신고 : 2019-서울강남-02231호개인정보보호책임 : 이희승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서비스 이용약관유료 서비스 이용약관채널톡 문의개인정보처리방침
© 2025 Ah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