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강대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성진대한민국 클래식계의 BTS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피아니스트인 조성진. 그의 공연은 60초 만에 매진되는 것이 대다수라고 한다. 1994년 대한민국 서울 출신의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하였다. 그의 부모님은 음악인의 길을 걷기 원하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묵묵히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15세의 조성진은 2009년 일본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하게 되고, 서울예고 졸업 후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그리고 2015년, 클래식계를 떠들썩 하게 하는 엄청난 소식을 들려주게 된다.5년에 한번씩 열리는 3대 국제 콩쿠르 중 하나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그 동안 단 한명의 한국인 우승자가 나오지 못한 콩쿠르였다. 그러던 중 2015년에 1980년의 당 타이 손(베트남), 2000년의 윤디 리(중국)에 이어 아시아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조성진이 우승을 하면서 전 세계와 대한민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래요 좋은 하루 되세요
Q. 제네바합의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강대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제네바 회담(Geneva Conference)은 크게 인도차이나 문제와 한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1954년 4월 26일부터 7월 20일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진행한 회담으로서, 인도차이나 문제는 어느 정도 결과가 도출되었으나 한국 문제는 해결을 이루지 못하였다. 공산측 참가국은 소련, 중국, 북한,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었으며, 서방측 참가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제4공화국, 남한, 베트남국이었다. 이외에도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16개 국가 중 남아프리카 연방을 제외한 15개 국가와 캄보디아 제1왕국, 라오스 왕국이 참가하였다. 소련, 미국, 프랑스 제4공화국, 영국, 중화인민공화국이 상시 참석하였고, 그 밖의 나라들도 관련 있는 주제가 논의될 때 회담에 참석하였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Q. 과거시대 마패의 등급은 어떻게 나뉘나요?
안녕하세요. 강대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마패는 관리들이 공무(公務)로 지방에 갈 때 나라의 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증표로 쓰던 패입니다. 지름이 10cm 정도인 동그란 구리 패에 말 그림이 1-10마리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전국의 주요 지역에 말을 빌릴 수 있는 역(驛)을 설치했습니다. 관리들은 역에서 역으로 이동하며 잠도 자고 말도 바꾸어 탈 수 있었습니다. 이 제도를 역참제(驛站制)라고 합니다.#고려 후기 #원 (元)나라의 간섭을 받으면서 말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었고, 이 때문에 허락받은 관리만이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마패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처음에는 마패를 나무로 만들었지만 쉽게 부러지거나 손상되자 1434년(#세종 16)에 철로 만들어 사용했고, 이후에는 #구리 로 만들었습니다.마패, 조선 후기, 9.5-11.5cm, 남산747마패는 양면에 각각 다른 내용을새겼습니다. 한 면에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말의 수를 새겼는데, 이는 관리의 등급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다른 면에는 주조 일시인 ‘연호(年號)와 연월일’과 임금의 도장을 담당하는 관청인 #상서원 (尙瑞院)에서 이 마패를 발급했음을 증명하는 #상서원인 (尙書院印)이란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마패로 부릴 수 있는 말의 수는 1-10마리까지지만, 실제로는 1-3마리 정도였습니다. 암행어사의 경우도 대부분 3마리가 그려진 3마패를 썼고, 10마리가 그려진 것은 왕실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조선 초기에는 국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 (承政院)에서 마패를 발급했습니다. 그 뒤 『#경국대전 (經國大典)』에서는 중앙의 경우 #왕명 (王命)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 (兵曹)에서 증서를 받으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해 마패를 발급한다고 규정했고, 지방에서는 #관찰사 (觀察使) 등이 마패를 지급 받아 보고를 올리거나 진상(進上)을 하는 등 필요한 때에 말을 이용했습니다. 군사 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 (雙馬)를 이용하고 ‘#긴급사 (緊急事)’라는 글자를 새겨 밤낮으로 달리게 했습니다.5마패, 조선 1627년, 11.5cm, 남산747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1511년(중종 6) 12월의 기록에 보이는 상서원의 서리(書吏)로 근무하던 최맹손(崔孟孫)같이 마패를 도둑질해 술과 밥으로 바꾸어 먹는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또 중국의 왕조가 바뀌면 대부분 연호(年號)를 바꾸었으므로 마패 또한 자주 다시 만들었습니다. 1730년(영조 6) 6월 기록에 따르면, 당시 각 지방에 160여 개, 중앙에 500여 개 등 모두 670여 개의 마패를 주조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하시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