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가 최고로 넓었던 영토가 어디까지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영토기 넓었던 시기는 광개토 대왕 시기 입니다. 백두산 지역, 압록강 남쪽 지역, 동해안 일대, 연해주 일대, 그리고 중만주의 부여 영토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인데 한편 대외전쟁을 펼쳐 2대 유리왕 때부터 북쪽의 선비족을 공격하고, 한나라가 남겨둔 잔존 세력들을 몰아냈다고 합니다. 5대 모본왕은 서기 49년에 요동지방과 요서지방을 지나 현재의 베이징 근처와 그 이북인 북평·어양·상곡·태원 등을 공격했는데 뒤이어 6대 태조대왕은 요서지방에 10성을 쌓아 관리지역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대 광개토태왕은 22년간 재위하며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Q. 조선시대에 부동산 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형태 였습니다. 부동산 거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나라에서 증명해주는 공증도 있었다고 합니다. 매수인이 매매계약서와 함께 공증해달라는 문서인 청원서를 관아에 제출하면, 관아에서 매수인과 계약에 대한 증인, 글을 써준 사람인 대서인을 불러 조사를 하느데 이때 계약 당시의 상황을 진술서로 작성하게 하는데, 계약 내용이 일치하면 관아에서 공증확인서를 써준다고 합니다. 이후 매매계약서와 공증청원서, 진술서, 공증확인서를 순서대로 붙인 다음에, 문서를 연결한 부분마다 도장을 찍으면 절차는 끝납니다. 공증 문서는 관청에서 보관하고 있어, 문서를 잃어버리더라도 재발급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Q. 화안옹주는 왜 정조를 끌어 내릴려고 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완옹주는 정치달의 친척인 정석달(鄭錫達)의 아들 정후겸을 양자로 들였다고 합니다. 정후겸은 어려서부터 문장에 재능이 있고 배짱도 두둑했는데, 게다가 화완옹주의 아들이라고 하여 영조의 총애까지 받았는데 그리하여 그는 16세가 되던 1764년(영조 40)에 장원서 봉사에 임명되었고, 2년 후인 1766년(영조 42)에는 별시에 합격하여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할 여건을 마련하였다. 이어 정후겸은 수찬을 비롯하여 승지를 거쳐 21세에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로 임명되는 초고속 승진을 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화완옹주와 영조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정후겸은 조정 내에서 또 하나의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고, 이 세력은 당파들과 결탁하며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의 세력을 위협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 습니다. 특히 정조가 대리청정을 하며 왕권을 이어 받기 위한 수순을 밟을 때, 화완옹주와 정후겸은 애매모호한 행동을 취하며 다른 이들도 대리청정을 건의할 수 없게끔 행동함으로써 정조의 행보를 방해하였었습니다. 이렇듯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한 이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정조는 이들에 대한 숙청을 감행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