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시성주는 고구려 말 군인으로, 1차 고당전쟁 당시 안시성에서 당 태종 이세민의 공세를 방어한 것으로 유명하며 후대에 구국의 영웅으로 숭앙받았습니다.
이를 제외한 삶의 모든 것이 미상으로 그 이름도 현전하지 않으나 후대 조선시대 세간에 의해 양만춘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안시성의 성주였고 재주와 용기가 있었습니다.
64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아 그 공격을 받았는데 성을 잘 지켰고 644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복하고자 군사를 일으켰으며, 645년 안시성까지 진군해온 당군에 맞서 오래 버텼기에 강하왕 이도종이 성의 동남방에 토산을 쌓기 시작했고 안시성주 역시 성벽을 더욱 높이며 대응합니다.
교전은 하루에 예닐곱회에 달했고 충차나 포석의 타격을 받아 파괴된 곳은 목책을 세워 수리, 당군은 60일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토산을 올린 끝에 불과 수 장거리에서 성을 내려보게 되며 과의 부복애 토산 수비를 맡았습니다. 얼마 후 토산이 무너져 성과 이어졌는데 부복애가 마침 자리에 없었고 안시성주가 재빨리 수백 명을 출전시켜 토산을 빼앗고 해자까지 둘렀습니다. 당 태종의 3일에 걸친 탈환 시도도 모두 저지, 겨울이 오면서 보급이 곤란해진 당 태종은 결국 총퇴각을 명하고 마지막으로 안시성 주위를 돌며 시위했습니다.
안시성주가 병력을 물리고 홀로 성에 올라 작별의 예를 갖추었고, 당 태종은 안시성주가 성을 고수한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00필을 내리며 격려, 이후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