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즉위 초기에는 성군의 기질을 보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즉위 후 처음 몇년동안은 세금 제도 정비, 부패 관리 처벌 강화, 군역 제도 개선 등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개혁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사창, 상평창, 진제창 등 빈민 구제 기관을 설치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비융사를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국조보감>, <여지승람> 등 주요 서적을 간행하고, 사가독서를 부활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폐비 윤씨 사건을 알고, 사람파와 대결하면서 폭군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