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조선시대 어진은 8명으로 태조, 원종, 영조(2점), 순조, 문조, 철종, 고종, 순종입니다. 어진을 그리는 방법은 왕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리는 '도사', 왕이 죽은 이후 가까운 신하 등의 기억을 토대로 그리는 '추사', 그리고 현존하는 어진을 참고해서 어진을 옮겨 그리는 '모사'가 있습니다. 태조, 영조, 철종의 어진은 도사이고, 나머지는 모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진의 제작은 『숙종실록』에 자세히 기록돼 있는데 먼저 어진을 만들기 위한 임시 기구인 어용도사도감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 관청은 ‘도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던 것으로 봐 왕이 살아있을 때 설치됐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선 어진을 그리는 화원을 선발했는데 그림과 관련된 일을 맡아보던 도화서에서 뽑거나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을 추천 받았다고 합니다. 소개된 사람들이 모두 어진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들 중에 솜씨 좋은 인물들을 가리는 시험인 시재를 치러서 대략 6명에서 많게는 13명까지 선발했고 이렇게 선발된 이들을 어진화사라고 했는데, 용안을 중심으로 그린 ‘주관화사’, 옥체의 덜 주요한 부분을 담당한 ‘동참화원’, 채색 일을 도운 ‘수종화원’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어진화사들은 맨 처음 먹을 사용해 초본을 그렸는데 이때 왕이 조정에 나갈 때 입던 강사포·원유관 차림과 왕이 집무를 볼 때 착용한 곤룡포·익선관의 모습 총 두 점을 각각 그렸고 초본이 완성되면 그 위에 비단을 따로 올려 채색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설채라고 하는데 주관화사가 주역을 맡고, 동참화사와 수종화사가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설채에 사용되는 비단은 육조 중 하나인 공조(工曹)에서 직접 만들어서 제공했다고 합니다. 특히 용포의 색채를 정확히 묘사하기 위해 세심한 정성을 기울였고, 용안을 작업하던 도중 안색이 변하지 않게 주의했는데 설채가 끝나면 신하들이 모여 완성된 어진에 절을 하는 첨배를 거행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