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여성도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았다고 합니다. 신사임당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7세기 이후 유교적 사회 윤리를 더욱 강조하게 되면서 여성의 지위도 크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제 여성은 바깥에 나가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도 없었고, 지식 습득에도 제한이 있었지요. 결혼한 후에는 시댁에 들어가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3년 동안 재혼이 금지되었고, 재혼한 여성의 아들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함으로써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했어요. 족보도 조선 초기까지 출생순으로 기록되던 것이 후기로 갈수록 선남후녀(남자가 먼저이고 그 후에 여자가 옴.)의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여성은 제사에 참석할 수 없었고, 재산 상속에서 제외되어 갔습니다. 또한 신분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기 때문에 양반 여성과 상민 여성의 삶도 매우 달랐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여성은 더욱 남편에게 기대어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삼종지도’입니다. 여성은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정 안에서만큼은 여성도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가르치는 일 그리고 제사를 준비하는 모든 일들은 여성의 몫이었으며
남편은 집안일에 간섭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