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강화도를 공격한 신미양요는 왜 일어난 것 인가요?
신미양요는 미국이 강화도를 공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국이 강화도를 왜 공격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신미양요는 어떠한 이유 때문에 일어난 것 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66년 7월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진행되던 고종 3년때 프랑스 함대의 침약이 있기 직전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소란을 피우다가, 평양 군민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안 미국을 조선 정부에 책임을 묻는 한편,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조선 정부는 이를 거절 하였고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함대의 로저스 제독은 5척의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를 침략해 오면서 발생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과 통상교섭을 하려고 한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많았으나 쇄국정책으로 통상수교가 어려운 상황에서 두 차례의 양요가 일어나게 되는데 첫째는 프랑스 신부 살해 등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우리나라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가 일으킨 병인양요(1866년)가 있었고 두 번째는 제너럴 셔먼호 습격사건을 빌미로 강화도를 침략한 미국에 의한 신미양요(1871년)를 들 수 있습니다. 많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군관민의 협력으로 적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굳건히 지켜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은 1866년 8월 평양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의 개항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사건 발생 뒤 미국은 두 차례 탐문항행을 실시합니다.
셔먼호사건을 응징하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동시에 조선과 통상관게를 수립하기 위해 두 차례 조선원정 계획을 수립하나 실천에 옮기지는 못합니다.
1871년 미국은 전통적인 포함외교에 의해 조선을 개상하기 위해 조선 원정을 결정, 주청미국공사 로우에게 전권을 위임하면서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에게 해군함대를 동원, 조선 원정을 명합니다.
로저스는 기함 콜로라도호를 비롯해 군한 5척에, 수해병 1230명, 함재대포 85문을 적재, 5월 초 일본 나가사키에 함대를 집결, 약 보름동안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고 5월 16일 조선원정 길에 오릅니다.
로저스는 조선측이 평화적 협상을 거부할 경우 무력시위 및 군사작전으로 강제적으로 입약을 성취시키겠다는 포함 책략을 수립하고 인천 앞바다에 내침, 서울로 가기 위한 수로를 탐색하기 위해 강화해협을 탐측하겠다고 조선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합니다.
6월 2일 강화해협의 탐측 항행을 강행, 함대가 손들목에 이르자 강화포대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조,미 간에 최초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집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