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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angel
Youangel23.12.10

발해는 어떻게 생성된 국가인지요?

안녕하세요? 고구려 멸망후에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취지 아래 발해라는 나라가 생성이 되었는데요 이것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생긴 나라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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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96년 5월, 영주에서는 거란족 추장 이진충(李盡忠)이 당의 지배에 저항하며 영주도독 조문홰(趙文翽)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때문에 영주 지역은 당의 통제가 불가능한 혼란한 상황이 되었고 이 틈을 타 이곳에 강제로 옮겨졌던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거란족, 말갈족 등이 탈출을 시도하였습니다. 대조영의 아버지인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이끄는 집단과 걸사비우(乞四比羽)가 이끄는 집단은 이때 영주를 빠져나와 함께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당은 추격을 포기하고 걸걸중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에 봉하며 회유를 시도하였으나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는 다시 당의 지배 아래 들어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당은 이해고(李楷固)를 통해 공격하려 했으며, 그 과정 중에 걸사비우가 죽자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무리를 이끌고 천문령 전투에서 격퇴합니다. 때마침 돌궐이 성장하자 대조영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더 이동하여 계루부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東牟山)에 도읍을 정하여 698년 진국을 세웁니다. 713년 진국은 '발해'로 국호를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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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68년 당은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 땅을 차지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 고구려 유민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고 이에 당은 고구려 유민을 통제하기 위해 영주로 강제 이주합니다. 이곳에서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 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음로 언제든 반란을 일으킬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696년 5월 거란추장 이진충과 손만영이 영주도독 조홰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봉기,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사리 걸걸 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 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 이동 도중 말갈인을 이끌던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대사리 걸걸중상이 전사함녀서 대조영이 무리를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 대조영은 추격해 오는 이해고와 당나라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크게 무찌른 뒤 만주 동부 지방에 남아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해 698년 길림성 돈화현 부근에 위치한 읍루의 동모산 기슭에 차지하고 당나라의 안동도호부를 정복하여 도호부의 한족들을 노비로 강등시키면서 곧 진국을 건국했고 말갈 촌장, 고구려 촌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진국와이 됩니다. 고왕 대조영은 천통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당나라는 대조영의 발새 건국이 기정사실화되고 돌궐 , 거란, 해 등의 압력으로 요하 유역과 만주 일대를 발해에게 정복당하고 안동 도호부도 멸망하자 발해인들을 달래기 위해 705년 책봉을 시도했으나 불발됩니다.

    713년 대조영은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이 되었고 홀한주 홀한주도독의 벼슬을 추가 , 당나라는 발해의 번성에 굴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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