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소련과의 대치 구도 속에서 극동아시아 방어선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던 미국은, 한일 양국을 협박하여 조속히 국교정상화 작업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가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자 민주화 세력에서 반미주의자들이 대거 양산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유신정권 시기까지만 해도 반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 때까지만 해도 친미 성향인 사람들이 상당수 많았지만, 5.18 이후로는 미국에 대한 분노 감정이 심화되는데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와 전두환 장군이 군대로 시위를 진압하며 정권을 잡자, 사람들은 당연히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당시 대통령 지미 카터가 불과 반 년 전까지 인권외교와 한국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박정희를 견제했던 터라 이번에도 카터가 나서줄 것이라며 미국의 개입을 기다렸지만, 미국과 지미 카터는 반 년 전과 달리 전두환의 폭력에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하며 미국이 독재자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셈이 되었다. 심지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고 외국 정상으로서 처음 만난 것이 전두환임을 보며 민주주의 수호자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서 반미 감정은 심화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