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고무신은 일제강점기 때 본격적으로 일본을 통해 공급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고무제 신발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생산량이 급증했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원활한 공기 순환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고무제 신발을 외면했다고 합니다.
1920년대부터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과거에 양반들이 신었던 가죽신인 당혜의 디자인을 차용했습니다. 당시 조선 최대의 고무신 제작 회사인 '대륙고무'에서는 순종황제가 신어 보고 편하게 여겼다는 식의 광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이 당시까지 일반인들의 신발이었던 짚신에 비하면 고무신이 훨씬 오래가고 신기 편안했으니 고급 신발이었다고 합니다.
고무신은 생고무에서 황을 더해 가열하는 가황기법을 할용한 것입니다. 가황기법은 미국에서 개발되었습니다. 이 기법에 따라 고무신이 일본에 소개되었고, 1918년 일본 고베지역의 공장에서 고미신발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고무신이 처음 생산한 것은 1922년 대륙고무주식회가가 '대장군'이라는 검정 고무신입니다. 이 회사가 낸 당시 광고에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께서 이용핫미에 항감함을 비롯하여 여고나 각 위의 애용을 수하야.."라는 글귀가 등장합니다. 즉 대륙고무의 친일 창업자 이하영이 순종에게 첫 제품을 진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