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유학을 담당한 6두품의 중대와 하대 역할 및 저서에 대해 궁금합니다.
통일신라시대 유학을 담당한 6두품의 중대와 하대 역할 및 저서에 대해 궁금합니다.
신라 3최인 최치원, 최언위, 최승우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라의 6두품은 진골 밑 계급 중에서 가장 유력 계층이었습니다. 성골과 진골이 넓은 범위의 왕족들인 것을 감안하면 왕족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서열이 높은 계층이었습니다. 6두품에 해당되는 계층은 신라가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통합한 경주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던 중소 국가들의 지배층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6두품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신라 중대였습니다. 삼국통일을 전후로 6두품 이하 귀족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진골을 누르기 위해 중위제(重位制)가 전격 시행되었고 이 제도를 통해 6두품은 4중아찬까지 진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문왕은 중위제를 활용하여 6두품을 적극 기용하였습니다. 그래서 6두품이 가장 많이 빛을 발했던 때가 삼국통일전쟁기부터 신라 중대 전제왕권기입니다.
중대에서 하대로 넘어가면서 중앙 진골끼리의 왕권 다툼이 격화되었고 신라 중대 왕실을 이룬 태종 무열왕계 진골들과 김유신 가문의 진골들도 하대에 이르면 원성왕계 진골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세력을 잃고 6두품으로 격하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일신라 시대 유학을 담당한 6두품 중대와 하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대
대보(大寶) : 경제 및 재정을 담당
대조(大祚) : 군사를 담당
대위(大威) : 법률을 담당
하대
중보(中寶) : 조직 및 기획을 담당
중조(中祚) : 감사 및 조사를 담당
중위(中威) : 교육 및 문화를 담당
또한 이들 중 일부는 각각의 분야에서 저서를 남겼습니다. 대조는 '좌문요람'을, 대위는 '형법요의'를, 중보는 '전경(典經)'을 중조는 '경주
군현기'를 중위는 '태백요사'를 각각 저술했습니다.
최치원은 통일신라 후기의 외교관이었으며 중국에 체류하며 외교 및 학문 활동을 펼쳤습니다. 최언위는 문신가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저
서인 '일성심신(一生心身)'은 신라시대의 문학작품으로 귀하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승우는 통일신라 후기의 선비였으며 '옥기(玉
器)'와 '순천만(順天門)'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최치원, 최언위, 최승우는 모두 신라시대의 문화 및 학문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로,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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