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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2

일제강점기 시인 이육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어요.

일제강점기 문학에 관심이 많은데요. 윤동주는 티비에서나 영화에서도 많이 나와서 잘아는데, 시인 이육사에 대해 많이 조명되지 못한거 같아서요.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름이 숫자264라는 말도 들어본거같은데요.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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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13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육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시인으로 본관은 진성 , 호는 육사, 본명은 이원록, 이원삼, 이활이며 후에 이육사로 개명했습니다.

    윤동주, 한용운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저항 시인으로 유명하며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인 이육사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 입니다.

    호는 육사, 본명 원곡 또는 원삼 개명은 활로 경북 안동에서 출생 하셨습니다.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경남 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였습니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927년 귀국 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사건을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다년간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그때의 수인 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 라고 지으셨습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 하셨습니다.

    육사란 이름으로 황혼, 신조선에 발표하여 사단에 데뷔하셨고, 1937년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를 발간 하셨습니다.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와 광야 등을 발표하셨으며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하셔서 이해 6월에 동대문 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되셨습니다.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를 하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했고

    투옥되었을 때 그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택했다고 전해집니다

    만주와 중국의 여러 곳을 전전, 정의부‧군정부‧의열단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서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1933년 9월 귀국하여 이 때부터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청포도」, 「절정」, 「광야」 등을 저술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의 시작세계는 크게 「절정」에서 보인 저항적 주제와 「청포도」 등에 나타난 실향 의식(失鄕意識)과 비애, 그리고 「광야」나 「꽃」에서 보인 초인 의지(超人意志)와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의 생애는 부단한 옥고와 빈궁으로 엮어진 행정(行程)으로, 오직 조국의 독립과 광복만을 염원하고 지절(志節)로써 일관된 구국투쟁은 민족사에 큰 공적으로 남을 것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