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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6.19

인도의 카주라호 사원은 누굴 위한 사원인가요?

세계에서 가장 야한 사원이라고 하는 인도의 카주라호 사원은 왜 이렇게 지어진 건가요?

석상조각들이 다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슨 뜻으로 이런 사원을 지은 건가요?

사원에 모셔진 신은 누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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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힌두교 신들의 속성은 종종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으로 드러난다.그러한 힌두 신들은 의인적(擬人的)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반 인반수적(半人半獸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한 예로 힌두교의 신 시 바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개구리’에 나오 는 주신 디오니소스처럼 욕망과 결점을 지닌 과장된 거인이자 주술사로 등장 한다.‘문화적 갑옷’이라곤 전혀 걸치지 않은 순수한 원초적 감정의 결정체 로서의 힌두 신.그 신들의 은밀한 속살까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곳이 바 로 인도의 카주라호 사원이다. 카주라호는 인도 북부 마디야프라데시 주의 북단에 위치한 궁벽한 시골마 을이다.인구 7천명이 조금 넘는 이 마을은 해가 지면 근처의 정글에서 원숭 이 울음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외진 곳이다.그러나 오늘날 카주라호는 인도의 대표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그곳 에 찬란한 ‘성(性)의 신전’ 카주라호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카주라호 사원 은 지난 8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카주라호 사원은 ‘달의 신’ 찬드라의 자손이 세웠다는 인도의 찬델라 왕 조가 서기 950년부터 1050년 사이에 건립한 인도-아리안 양식의 석조사원이 다.전성기에는 85개의 사원이 있었지만 14세기 이슬람 교도의 지배아래 들면 서 파괴돼 현재는 22개만 남아있다.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시가지를 중심으로 서군과 동군,그리고 남군으로 나뉜다.이 가운데 특히 이목을 끄는 곳은 서군 (西群)으로 가장 많은 사원이 보존돼 있다.카주라호 사원중 제일 큰 높이 31 m의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을 비롯해 공포의 여신 칼리에게 바쳐진 차운사 나트 요기니 사원,시바와 파르바티 부부상이 새겨진 데비 자가담바 사원,시 바신이 타고 다닌다는 황소 난디가 새겨진 비슈바나트 사원,태양신 수르야를 모신 치트라굽타 사원 등 특징적인 사원들은 모두 이곳에 몰려 있다. 카주라호의 사원은 화강암으로 된 차운사나트 요기니 사원을 빼고는 모두 사암(砂岩)으로 만들어졌다.이곳에서 20여㎞ 떨어진 켄강에서 캐낸 것이라는 이 사암은 분홍색,황갈색 등 색깔도 가지각색이다.그러나 카주라호 사원 외 벽은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듯 군데군데 거무스름하게 빛이 바래 안타까움을 안겨줬다.그런 곳엔 으레 찌든 때를 벗겨내는 ‘사원지기’들이 있었다.그들 의 눈동자엔 하나같이 신심(信心)이 가득했다.하루종일 야자나무 솔에 암모 니아수를 묻혀 검댕을 닦아내는 것이 그들의 ‘소명(召命)’이다. 카주라호 사원을 카주라호 사원이게 하는 것은 바로 사원 외벽에 장식된 미투나상(像),곧 남녀교합상이다.‘에로틱 조각의 신천지’라는 말에 걸맞게 카주라호 사원의 수많은 나신(裸神)들은 데칸고원의 대지 만큼이나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카주라호 사원 가운데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꼽히는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으로 발길을 옮겼다.사원은 말끔하게 정돈된 잔디밭과 나직한 울타리가 어우러져 유적공원 같았다. 이름모를 새소리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빨간 부겐빌리아 꽃 내음이 진동 하는 사원은 마치 열락(悅樂)의 땅인양 평온했다.사원 바깥 벽에는 900개가 넘는 온갖 형상의 조각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 중의 압권은 단연 관 능미의 극치를 이룬 미투나상이었다.차오르는 만월처럼 풍염한 여인의 젖가 슴과 봉곳하게 솟아오른도발적인 히프,목 뒤에 입술을 살짝 갖다대면 발목까 지 그대로 흘러내릴듯한 매끄러운 몸 선….미투나 상이 뿜어내는 관능은 더 이상의 비유를 허락치 않았다.오죽하면 마하트마 간디는 사랑의 행위를 적 나라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들을 모두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을까. 인도인들은 도대체 어떤 심경으로 신성한 사원에 이처럼 보기 민망한 상들 을 새겨 놓았을까 궁금했다.순간 기자의 머리속에는 ‘북회귀선’의 작가 헨 리 밀러의 말이 떠올랐다.“섹스는 환생해야 할 아홉가지 이유 중의 하나다 …나머지 여덟가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밀러의 생 각일 뿐.미투나상의 성결합 자세는 차라리 음양(陰陽) 에너지의 상징이자 정 신적 생명력의 승화된 표현으로 다가왔다.힌두들은 금욕적이고 내세적이며 염세적이어서 현실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그것 은 일면적인 고찰에 불과하다.그들은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는 않지만 그것을 죄악시하지도 않는다.미투나 상은 기본적인 도덕률만 지키면 얼마든 지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는 그들의 독특한 성관(性觀)을 압축해 보여준다.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가면 올드 카주라호 마을에 이른다.이 마을을 조금 지나면 동쪽 그룹 사원들을 볼 수 있다.이곳엔 파르스바나트· 산티나트·아디나트 사원 등 3개의 자이나교 사원들이 한 데 모여 있다.이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 곳은 파르스바나트 사원이었다.이 사원 안에 있는 몽골리안 얼굴의 여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잔상(殘像)을 남겼다.여 기서 다시 남쪽으로 1㎞쯤 가면 카주라호 사원들 중 마지막으로 조성된 두라 데오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전성기를 지나 쇠락한 기미는 있지만 이곳의 압사라 천녀상 만큼은 남부 그룹 사원의 백미로 일컬어질 만했다. 카주라호 사원의 관능적인 조각상들을 완상(琓賞)하기에 하루 일정은 빠듯 했다.어느덧 해는 기울고 사원 어깨 너머로 붉은 저녁노을이 물감처럼 번졌 다.욕정의 파도가 물결치는 카주라호의 나상(裸像)에도 희미한 그림자가 드 리우기 시작했다.어둠에 스러져가는 사원은 이제 원숭이들의 독천장(獨擅場) .휘늘어진 고목 위를 무리지어 오르내리는 원숭이들은 사원의 터주대감이자 ‘하누만’신(神) 바로 그것이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 마디아 프라데시에 위치한 카주라호 사원은 찬델라 왕조가 9~11세기에 건립했습니다. 이 사원은 성행위를 포함하여 인간 삶의 다양한 측면을 묘사한 조각품을 포함하여 복잡한 석조 조각으로 유명합니다. 아직까지 이 조각에 대한 설립 목적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이는 신성하고 영적인 결합으로서의 육체적 사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균형과 조화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교육적 요소로 설립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원에 모셔진 신은 여러 명인데, 가장 유명한 신은 시바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카주라호 기념물군은 섬세한 건축 양식과 생명력 넘치는 성적인 조각품으로 구성된 독특한 예술 유적이다. 사원에는 다채로운 신화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다. 이는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종교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해괴망측한 표현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카주라호 사원들은 1202년 이슬람교도의 침입 전까지 인도에서 번창한 찬델라 문화를 증명하는 탁월한 유적이다.



    카주라호 기념물군은 섬세한 건축 양식과 생명력 넘치는 성적인 조각품들로 구성된 독특한 예술 유적이다. 사원에는 다채로운 신화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다. 이는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종교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해괴망측한 표현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카주라호는 10세기 초에 이 지역을 통치한 라지푸트(Rajput) 일족의 힌두 왕조인 찬델라의 원래 수도였다. 카주라호 사원들은 950년〜1050년까지 10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찬델라 왕조는 카주라호 일대에 사원을 85개 축조하였지만, 지금은 약 6㎢의 지역에 22개만 남아 있다. 1335년 이곳을 방문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곳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난다.”


    카주라호 사원의 기념비들은 지리적인 특성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뉘는데, 이들은 모두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유적에 속한다. 모든 사원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다양한 부조들이 장하(jangha, 벽)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높은 기단 위로 솟은 본당은 기단과 수직을 이루어 사원의 높이를 한층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내부는 대부분 같은 구조이며, 입구에서 작은 홀을 통해 가장 안쪽에 자리한 본당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본당의 지붕은 처마 끝을 여러 층으로 높이 쌓아 올린 시카라(Sikharas, 산봉우리) 형태이다. 신성한 성역은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


    954년에 야소바르만(Yasovarman) 왕이 세운 락슈마나 사원은 비슈누(Vishnu) 신을 모시는 곳이다. 이곳에는 찬델라 왕조의 권력과 위엄을 재현한 듯한 정밀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비슈바나타와 파르슈바나타, 바이드야나타 사원은 야소바르만의 계승자인 당가(Dhanga) 왕 시대에 건립되었다. 자가담비 사원과 치트라굽타 사원은 카주라호의 서쪽 사원 그룹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은 카주라호의 서부 사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웅장하며, 예술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완벽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간다 왕(Ganda, 1017〜1029) 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