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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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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과 요가 사상이 궁금합니다.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과 요가 사상이 궁금합니다.

아시아 사상에서는 인간의 영혼은 영원불멸하며,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를 반복하며 계속 윤회한다고 했네요.

마음을 사멸하는 엄청난 수행이 요가입니까?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범아일체(汎我一體), 즉 우주의 본체(汎)와 인간의 본체(我)가 원래 하나임을 주장하는 우파니샤드 철학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다면 끝없는 고통의 윤회 사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우파니샤드 철학은 브라만 교의 형식화를 비판하며 그 내부에서의 개혁사상으로서 출현하였다.

      요가 수행 이론은

      요가의 목적은 쁘라끄리띠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아가 쁘라끄리띠로부터 절대적으로 독립되어 있다는 인식을 통해, 자아를 정신작용과 동일시하는 무지와 착각에서 벗어나 뿌루샤로서 참된 자아가 드러난다. 요가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수행에서 다음과 같은 개념을 논한다. 찟따브리띠는 잔잔한 수면에 이는 물결과 같이 찟따에 이는 작용이다. 찟따는 자아와 별개의 존재이다. 찟따는 빠딴잘리에 의하면 붓디(고통), 마나스(마음), 아항까라(자아의식)의 복합체인 내적 기관이다.

      요가 수행은 바로 이 찟따를 통제하기 위한 수행론이다. 혼동되는 정신 작용, 찟따브리띠를 소멸시키고 자아가 찟따와 분별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통제는 빠딴잘리에 의하면 여덟 단계가 있다. 각기 금계의 야마, 권계의 니야마, 좌법의 아싸나, 조식법의 쁘라나야마, 제감의 쁘라땨하라인 다섯 가지 하타 요가와 응념의 드하라나, 정려의 드야나, 삼매의 싸마디인 세 가지 라자 요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무위키 고대 동아시아와 인도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나무위키 요가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파니샤드에 대해 먼저 기억해야 할 주요 단어는 두 개다. 아트만(我)과 브라만(梵). 이 두 단어가 가장 중심이 되는데, 이 단어들이 서로 상반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일치하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그럼 차례차례 살펴본다.

      우파니샤드의 중심적 관심사는 다음 세 질문 안에 반영되어 있다 : 내 존재의 그 깊은 심현처에서 나는 누구인가? 만유의 궁극적인 기초는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깊은 자아와 궁극 실재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파니샤드에 있는 명상과 사변의 결론은 자신의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심현처에서 모든 사람이 우주의 궁극적인 힘과 실재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결론 부분으로 그리고 종전의 모든 성전의 진리에 대하여 최고이고 가장 심오한 선언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자아를 발견하는 자는 일체 세계들을 획득하며 불멸을 포함한 모든 욕망을 충족시킨다. 이런 해탈의 지식에 대한 관건은 의식의 과정과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범속한 자아와 이들 과정과 내용의 궁극적인 바탕인 자아 사이의 구별이다. 아트만과 브라만의 일치가 이런 의미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물아일체(物我一體) 또한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재사에 이르면 불교도, 자이나교도, 사명외도는 베다의 제사 전통 전체를 거부했으나 우파니샤드 성자들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자신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길로서의 제사 행위를 용인한 것은 우파니샤드의 특성이 되는 지식의 길을 먼저 예비한 것이었다. 제사의 길은 리타 즉 근본적 리듬이며 규범인 리타 안에 바탕을 두고 있고, 리타로 통제되고 있는 존재에 대한 비전 안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은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리타는 우주 안의 만물을 제어했다. 그것은 힘 중의 힘이며 신마저도 초월했다고 나온다. 이에 발전하여 브라만(위대한 창조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존재의 기초적인 바탕이자 힘인 브라만, 그 브라만에 대한 추구는 중요한 우파니샤드의 탐색이 되었다. 우파니샤드의 또 다른 모색, 즉 궁극 자아에 대한 모색도 역시 그 뿌리는 제식적 전통과 재사라는 문제의 등장에 두고 있다.

      자아에 대한 이념들로 들어가 보면 흥미로운 얘기들이 나온다. 우파니샤드의 중심적 물음은 ‘죽음에서 살아남고, 삼사라에서 해탈할 수 있는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들은 물, 호흡, 불, 지식이다. 이들 제각기는 인간 생명에 불가결의 것이며, 영속적이며, 그리고 삼사라 이념이 필요로 하는 많은 형상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다. 먼저 물을 살펴보자. 이는 서양 철학사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를 생각하게 한다.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보았던 탈레스와 비슷하게 물로서 ㅡ 이 자아 이론은 물이 생명에 필수적이며 그것이 삼사라 이론이 요구하는 다양한 형상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다. 호흡으로서의 자아는 호흡이 없으면 죽으므로 그것이 생명의 기반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호흡이 죽어가는 사람을 떠나면 그것은 모든 생명 기능을 함께 가지고 가며 편재하는 바람 안에 있는 집으로 그 사람을 데려간다고 여긴다. 불로서의 자아는 의심할 여지없이 제화의 이념, 즉 천계의 신들에게 제물을 날라다주며 야즈냐를 통해 음식 제물을 약속된 새 생명으로 변화시킨다는 제화의 이념과 연결된 것이다.생명이 육신을 떠날 때 육신이 차거워 진다는 관찰과도 역시 연결되어 있다.지식으로서의 자아는 아트만이라는 이념을 가능케 한 것이다. 해탈의 길은 자아와 지식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연히 제사 행위 위의 지식을 강조했으며, 그리하여 지식의 길이 탄생되었다. 호흡,물,불로서의 자아 이념들은 가장 깊은 자아를 존재의 궁극적인 힘과 바탕과 상호 동일시할 수 있는 길을 이미 마련해두었으므로 지식이라는 본성을 갖는 자아를 브라만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지식의 위력은 모든 위력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우파니샤드의 중심 개념인 아트만과 브라만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각 개별적인 우파니샤드는 수많은 다른 견해들,때로 상반된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만유의 궁극적인 바탕으로서의 브라만에 대한 모색 그리고 브라만과 개인적 존재의 궁극적인 바탕인 아트만과의 최종적인 동일시는 여기서 분명히 제시된다.브라만은 우주의 바탕이자 불가멸이고 궁극적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다.브라만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고 마음이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브라만은 만유의 근원이고 지탱하는 힘과 생명이며 심정안의 자아이다.이에 반해 아트만은 다른 곳이 아니라 오직 지식에만 있으며,자아 지식의 경우에는 자아가 만물이므로 별도로 알아야 할 대상이 없다. 순수지성으로서의 자아와 세계의 바탕과의 일치를 확언하는 야즈냐발크야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들은 동일하므로 아트만이 브라만을 알게 되는 일에는 문제가 있을 리 없다. 이 범아는 순수지성의 본성을 지니게 되며,범아의 충만과 순수가 실현되면 그때에는 만물이 무매개적으로 자연적으로 아트만 자신의 빛에 의해 조명된다.

      우파니샤드는 존재의 영적인 기반을 추구하려는 인간적 노력의 탁월한 증거이다.사람들 각자 안에 내적 자아가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바탕과 동일하다는 발견을 통해,우파니샤드는 제사의 길로부터 지식의 길로의 이행을 표징하고 있다.브라만은 만유의 궁극적인 바탕이고 근원이고 버팀목이며 만물의 회귀점이다.그러나 그것은 존재의 온갖 형상에 선행하여 어떤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도 없고,어떤 다른 것을 빌어 적절히 정의할 수 없으므로 어떤 범속한 방식으로 알려질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