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설은 통일신라 시대 도선에 의해 도입되었습니다. 이후 풍수지리설은 도참신앙과 결합되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화적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실과 양반층은 묘지, 궁궐, 성곽, 도시의 터를 정할 때 풍수 원리에 따라 결정하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묘지 풍수가 더욱 유행하여 양반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풍수지리설을 신봉했습니다.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을 지관이라하여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풍수지리와 관련된 관련된 기관으로 관상감은 궁궐, 왕를, 태실, 축성 등 국가적 사업에서 지형을 감정하는 역할을 당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