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이 설립된 배경과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어떤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은행 설립을 필요로 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나 기관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그런 최초의 은행이 어떤 형태로 운영되었나요?
은행의 업무 범위와 기능, 그리고 고객에게 제공한 서비스 등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78년 제일은행 등 일본계 은행들이 조선에 진출해 일본의 경제 침탈이 우려되면서 한국인들은 근대적 금융기관을 설립해 자국 상공업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1894년 조선은행, 제국은행, 한흥은행 등이 설립되나 한 해도 못가고 단명, 1897년 한성은행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순수 민족 자본 은행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민간인에 대한 환전 및 금융업무를 주요 목표로 영업을 시작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 개점휴업상태에 이르게 되며, 이에 영업목표를 황실 및 정부재산의 관리와 금융으로 전환, 1903년 2월 합자회사 공립한성은행으로 개편하게 됩니다.
은행장은 황실측근인 이재완, 부은행장 김종한, 실무책임자인 우총무에는 한상룡이 취임, 그 뒤 한상룡이 주동이 되어 은행실무의 근대적 개혁을 단행합니다.
1905년 금융공황이 닥쳐 큰 타격을 받게 되자 이해 9월 자본금 15만원의 주식회사 공립한성은행으로 변경, 일본 다이이치은행의 융자를 받아 위기를 극복하게 되며 발행 주식 3000주 중 다이이치은행이 800주를 인수함으로써 운영자금은 거의 전적으로 다이이치은행에 의존, 그 뒤 저리자금으로 융자받아 고리로 대출함으로 크게 이익을 얻었습니다.
1906년 3월 은행조례에 따라 주식회사 한성은행이 되며 이해 10월 수원지점ㅐ설이 개설, 1907년 자본금이 30만원으로 증가, 1908년 2월 동막 출장소를 개설합니다.
1910년 국권상실과 동시에 한상룡이 전무취체역에 취임, 1911년 1월 친일파의 은사공채를 인수해 일거에 자본금이 300만원으로 증자 ,각지에 1911년 평양지점, 1912년 대전지점, 1915년 8월 개성지점 등이 개설됩니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한국인들의 맹렬한 배척과 비난의 대상이 되며 당시 은행장은 이완용의 형인 이윤용이었으며 전무는 이완용의 조카인 한상룡이었을 뿐 아니라 은행의 대주주들이 거의 친일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금을 일시에 모두 인출해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 이와 함께 불어닥친 1920년대의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이이치은행으로부터 200만원의 구제자금을 융자, 1922년 일본인들의 경영참여가 허용되고 그 뒤 그들이 전무, 은행장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1928년 3월 발행주식 6만주중 2만 8000주를 조선식산은행이 인수, 조선식산은행의 지배를 받으며 일제의 민족계은행통합정책에 의해 1941년 경상합동은행을 흡수, 합병했고 1943년 동일은행과 합병해 조흥은행이 됩니다.
조흥은행은 1994년 4월 충북은행과 강원은행을 합병하며 2006년 4월 1일 옛 신한은행과 통합해 (주)신한은행으로 다시 출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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