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터울이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형제는 '인조반정'으로 아버지 인조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국왕으로 집권하기전부터 사가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형제였습니다. 청나라에서 볼모생활을 하던 시절도 동고동락한각별한 사이였으며 소현세자가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다면 봉림대군은 활달하고 씩씩하여 서로성격은 달랐지만 두 형제의 우애는 깊었다고합니다. 청나라는 항복 조건 중 하나로 소현세자를 인질로 잡아간 것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자국으로 끌고 갔습니다. 후계자가 아닌 봉림대군까지 끌려간 이유는 혹시라도 소현세자에게 변고가 생길 가능성을 대비하여 조선을 흔들 수 있는 또 하나의 패를 확보하기위해서였습니다.
정묘호란으로 후금이 조선을 공격하여 왕자를 볼모로 데려갔는데 직겨가 아니었고 조선이 친명배금 정책을 이어가자 청 태종은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을 공략합니다. 중국 내륙에서 명나라와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후방의 조선을 안정시키고 명나라와의 전쟁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는 강화도로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에 갇혀있다가 구원병과 의병들이 청군에게 대파당하고 강화도에서 왕실가족들이 끌려나왔다는 소식에 삼전도에 나와 삼배고구두의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청태종은 소현세자와 세자빈 봉림대군 삼학사(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을 청나라로 끌고가 볼모로 삼았습니다. 10여년을 청나라 심양에서 볼모로 살다가 소현세자가 먼저 귀국하였으나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자 봉림대군이 다음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북벌론으로 유명한 효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