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범도 장군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산수에 들어가 수렵과 광산업으로 살아가다가 일제가 총기류 단속에 나서자 이에 저항하여 산수갑산의 수렵인들과 일본군에 맞서 싸우면서 크고작은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에는 독립군들과 합류하게 되었고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에 버금가는 봉오동 전투를 대승리로 이끌어 우리 독립리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일본군 전사자 150명 중상자 400명 경상자 200여명이 발생한데 비해 우리 독립군의 피해는 4명 전사에 불과했습니다. 일본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갔다가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유시로 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우리 독립군 1500여명이 참변을 당하게 되는 자유시참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몸을 실고 중앙아시아로 가게 되었고 고려극장 수위를 하다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유시 참변의 개입과 소련 공산당 가입경력 등은 지금 시대의 잣대로 그당시를 재단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스탈린의 러시아는 그당시에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일제와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고 자유시 참변도 붉은군대와 고려독립군이 만주 등에서 올라온 부대와의 마찰로 벌어진 것으로 홍범 도장군의 개입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