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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전성기 시대 근초고왕의 업적이 궁금합니다.

백제 전성기 시대 근초고왕의 업적이 궁금합니다.

정복 활동도 많이 하고 일본과 교류도 활발하였다고 하는데, 백제의 후손이 일본의 선조라고 하니 새롭기도 하고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초고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1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46년∼375년이다. 즉위 후 왕권 강화·확립에 주력한 후 활발한 정복활동을 전개했다. 낙동강 서쪽의 가야 세력을 영향권 안에 넣었고, 371년 벌어진 평양성 전투에서는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대방 고지까지 차지하여 백제 역사상 최대의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요서지방에 백제군을 설치하여 무역기지를 확보하는 등 해상로를 장악하여 활발한 상업활동도 전개했다. 일본에 유학사상 등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기도 했으며 이 같은 신기운을 배경으로 『서기』라는 국사 책을 펴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초고왕은 백제 13대 임금으로, 서기 346년에 즉위하여 375년까지 30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마한과 가야,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

      중국 요서 지방, 일본 규슈 지방과 활발한 교류

      역사서 편찬, 수도의 확장, 왕권 강화, 해상 무역 등을 발전시키는 등 다방면에 걸친 업적을 남긴 임금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의 13대 국왕 근초고왕은 소위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군주입니다.



      그 평가에 걸맞게 수많은 업적을 세운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근초고왕은 영토를 확장하여 백제의 국경을 다시 그은 왕입니다.



      근초고왕은 한반도에 있었던 부족 연맹체인 마한의 대부분을 백제의 영토로 편입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라도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구려와의 충돌에서도 영토를 확보하였습니다. 고구려와의 충돌은 고구려의 공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치양에서 이뤄진 전투를 근초고왕이 태자 부여수(이후 근수구왕으로 즉위)를 파견해 막아내고, 2년 후 고구려를 역으로 공격해 황해도 지역을 일부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기세를 몰아 평양성 전투에서는 고구려의 국왕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 까지 하면서 고구려와의 충돌에서 성공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만 고구려의 반격으로 평양성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고 이후 북쪽으로의 영토확장은 어려워지게 됩니다.



      영토 확장을 제하고도 근초고왕은 외교 면에서도 나름의 업적을 세운 인물입니다.



      주변국과의 외교에 열심이었던 근초고왕은 백제 역사상 최초로 중국 사서에 기록된 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왜(일본)와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으며, 이 사실은 칠지도, 아직기와 왕인의 이야기로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한반도의 가야 그리고 신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어, 고구려를 견제하는 데 함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로도 백제, 왜, 가야는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면서, 후에 고구려, 신라와의 전쟁에서 서로 협력하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근초고왕은 국가 내부적으로도 안정화를 시킨 인물입니다. 당시 백제는 왕위를 잇는데 있어서 고이왕계와 초고왕계, 두 계파로 나눠져 왕위 계승에 있어서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여기서 근초고왕은 자신의 업적으로 부터 나온 왕권을 이용해 초고왕계의 인물이 왕위를 잇는 것으로 내부적 분란을 종식시킵니다.



      이런 모습은 당시 고흥이라는 인물이 편찬한 역사서 <서기>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근초고왕의 명으로 고흥은 역사서를 편찬하게 되는데, 해당 역사서에서 백제의 건국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초고왕계에 속하는 온조가 백제의 건국의 중심 인물로 묘사됩니다. 근초고왕이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서를 편찬하도록 했다는 것은 초고왕계의 인물이 왕위를 잇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업적을 세웠을 것으로 추측될 만큼 근초고왕의 백제는 강성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오랜 시대의 인물이기에 남은 기록이 많지 않거나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