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지도는 왜이렇게 반듯한거죠?
보통 어느나라든 지도 보면 약간 자연스럽다 해야하나? 울퉁불퉁합니다. 곡선이에요. 근데 아프리카 지도보면 어느 면으 완전 반듯하네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 땅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서부터 벌어졌던
침탈과 침략의 역사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인위적으로 나뉜 것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산‧강‧촌락 등 자연조건에 따라서 국경을 구분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그러한 배려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의 경우 국경선은 산과 강을 경계로 구불 구불하게 그으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국경선들은 일직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나라들이 자기들의 이권을 따라 국경선을 그읏기 때문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식민지배를 한 강대국들이 자기들 통치하기 편리 위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지도는 강과 산등을 따라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이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분할 할 때 자기들 마음대로 삼무실에서 자를 대고 선을 그어서 나누어 가졌기 때문 입니다. 원래 국경을 나눌떄는 자연적인 요소아 민족적인 요소를 고려 해야 하는데 이런 고려가 없었기에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민족 간의 국경 분쟁 및 내전이 계속 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0년대부터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내 식민지 개척에 대한 관심은 극대화 되었고, 한정된 아프리카 땅을 놓고 벌어지는 아프리카 쟁탈전으로 유럽 제국들 간 갈등이 고조되고 전쟁의 가능성은 높아졌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서아프리카 회의’ 혹은 ‘콩고 회의’로도 불리우는 ‘베를린 회의’는 콩고 강 어귀에 대한 특별 지배권을 주장하는 포르투갈의 제안으로 개최되었다. 독일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의 주재로 1884년 11월15일부터 1885년 2월26일까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국가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노르웨이, 터키, 그리고 미국 등 총 14개국이었다. 14개국 중 프랑스, 독일, 영국 그리고 포르투갈은 이 회의 주요국으로 당시 아프리카 식민지 쟁탈전의 이해 당사자였다. 이 회의는 아프리카인이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유럽 열강간의 충돌을 줄이고 아프리카 식민화에 대한 규칙을 논하는 자리가 되었다. 베를린 회의에서 포르투갈의 콩고강 유역에 대한 포르투갈의 영유권 주장이 거부되면서 벨기에 레오폴 2세(1835-1909)의 개인 식민지인 ‘콩고 자유국’이 탄생하게 됐다.
베를린 회의가 개최될 시기까지 아프리카의 80%는 그들 전통에 의해 자치적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직 아프리카 해안 지역만 유럽에 의해 식민지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회의로 유럽 제국열강들은 아프리카 내륙 통제권을 손에 넣기 위해 다투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에 의해 결정된 문화, 언어, 종교, 정치적 경계에 대한 고려 없이 기하학적 경계선에 대해 협상을 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지리학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전통적 정치 분할에 대한 이해 없이 경계선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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