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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3.23

정도전의 표전문 사건이란 무엇인가요?

정도전의 표전문 사건은 무엇인가요?

어떤 사건이길래 정도전을 명나라에서 소환하라고 했던 건지 궁금합니다.

표전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도 함께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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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3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 명나라에 보낸 표전문의 글귀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1395년 11월에 조선 조정에서는 예문춘추관 태학사 정총을 명나라에 보내 국왕의 고명과 인장을 청하는 글을 보냈으며, 1396년 2월에 조선에서 정총, 김약항을 사신으로 보냈고, 하정사 김을진이 돌아오면서 명나라에서 조선이 보낸 표준문이 경박하고 희롱하며 업신여기는 문구가 지적한 사실을 알렸다.

    3월에 명나라에서는 인신과 고명을 줄 수 없다며 표전문의 작성자를 보내라면서 계품사로 간 정총을 명나라에서 억류했으며, 4월에 표문을 가져온 관원의 가족들을 보내지 않으면 관원들을 금치(金齒)로 유배보내겠다고 했다.

    6월에 명나라에서 우우, 왕예, 송패라, 양첩목아 등을 보내 조선에서 보낸 표문과 전문에 경박하고 모멸하는 구절이 있다고 해서 조선에서는 단지 전문을 지은 자만 보냈으니, 표문을 지은 정도전과 정탁 등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조선에서 표전문을 지은 권근, 정탁과 교정을 한 노인도를 보내면서 하륜을 계품사로 보내 표전 작성에 대해 보고하도록 해서 경전과 역사서에 밝지 못하고, 다른 나라 말이라 언어와 음이 다르며, 표전문의 체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하면서 정도전이 표문 작성에 참여하지 않은데다가 병중이라 갈 수 없다고 했다.

    하륜, 정탁이 귀국했고 정총, 권근, 김약항, 노인도 등은 억류되었고, 1397년에 권근, 안익, 김희선은 조선으로 돌아왔으며, 명나라에서는 정도전을 다시 보낼 것을 요구했고, 8월에 광주목사 유호가 천추사로 파견되었다.

    이 때의 문구가 문제되어 이 때의 글에 참여한 공부, 윤규, 윤수를 보내라고 했으며, 11월에 정총, 김약항, 노인도 등이 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조선으로 전달되었다. 요동으로 압송된 공부, 윤규, 윤수 등은 가던 도중인 1398년에 홍무제가 사망하면서 사면령으로 풀려나 조선으로 귀국했다.

    출처: 나무위키 표전문제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표전문제 > 조선 초기 명나라에 보낸 표전문의 글귀 때문에 일어난 사건 입니다.

    본래 중국에 대한 사대문서로 국왕이 중국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 황태후.황후 또는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 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 사신이 중국 예부에 바치는 자문은 표문과 전문으로 문장을 작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표전문제라 하면 조선 건국 초기 명나라에 보낸 표전문의 글귀가 예의에 어긋났다고 명에서 트집을 잡아 이로써 발생한 양국간 일련의 불화사건을 말합니다.

    표면에 대한 시비는 1397년에도 있었는데 표전문의 트집잡아 개국의 중신 정도전을 압송하여 했던 것은 1374년 공민왕(23) 김의가 명사 채빈을 줄이고 원나라에 붙는데 크게 노했어 명나라 태조의 보복 이었던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정 내에서 조광조 총리와 김황직 국무위원이 이끄는 두 파벌이 연루된 사건입니다. 조광조는 부패를 줄이고 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일련의 정치 및 사회 개혁을 시행해 왔으며, 이로 인해 많은 귀족과 궁중이 분노했습니다. 조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김은 표준문으로 알려진 일련의 문서를 조작했는데, 여기에는 조가 중국 명나라와 협력하여 조선 조정을 전복시켰다는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표준문은 왕에게 바쳐져 결국 사형에 처한 조를 체포하고 투옥하는 구실로 사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도전의 표전문 사건은 16세기 말 조선 시대의 일어난 사건으로, 당시 조선의 왕세자인 경국대군(이유, 1575-1600)과 그의 지지자들이 정치적인 이견으로 타협을 이루지 못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경국대군은 조선 시대의 왕권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정도전은 그의 후원자로서 왕권을 제한하고 양반들의 권력을 확대하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내정파는 왕이 이를 막기 위해 경국대군을 살해하려고 하며, 이러한 정치적 긴장 상황에서 1598년에는 경국대군을 후원하는 양반들이 표전문을 작성하여 조선 중앙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이 표전문은 경국대군의 비난과 양반들의 권력 확장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내정파는 표전문을 작성한 양반들을 반역죄로 처형하려고 했고, 정도전도 이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이후 정도전은 명나라에 소환되어 사형당하게 됩니다.

    정도전은 경국대군을 지지하고 표전문을 작성한 양반들과 연루되어 국가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명나라에 소환되어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 시대의 정치적인 긴장 상황과 경국대군의 왕권 비판적인 입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본래 중국에 대한 사대문서(事大文書)로 국왕이 중국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황태후·황후 또는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이라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

    사신이 중국 예부(禮部)에 바치는

    자문(咨文)은 표문과 전문으로 문장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표전문제라 하면 조선 건국 초기 명나라에 보낸 표전문의 글귀가 예의에 어긋났다고 명에서 트집을 잡아 이로써 발생한 양국간 일련의 불화사건을

    말한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도전의 표전문 사건은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 말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당시 조선 정조 때, 정도전은 각 지방에서 선발된 유학생들에게 비리와 부정을 처벌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업무를 이용해 정도전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불법적인 수익을 얻으려는 야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결국 1589년, 정조는 정도전을 파면하고, 그의 비리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표전문을 발행했습니다. 이 표전문은 정도전이 부당한 처벌과 불합리한 벌금을 부과했던 경우에 대해 조사를 요청하고, 이에 대한 신고나 제보를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표전문이 발표된 이후, 정도전과 그의 추종자들은 표전문을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은 일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결국 정도전과 그의 추종자들은 체포되어 처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시대 중기의 정치적인 불안정과, 행정부의 비리와 부정을 규탄하는 대목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