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청자는 유약을 바르는 과정에서 나무 재와 석회석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재료의 비율과 조합이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고유의 색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료의 수급이 어려워지고, 제조 기술도 점차 잊혀져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도자기의 주요 수요층은 당연히 왕족이나 귀족 등 지배계급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다면 사치스러운 상감청자를 마음껏 누리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경제적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닌데 무엇보다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갖춰야 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11~12세기 고려가 경제적으로도 풍족했고 지배계급의 문화 수준도 높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벽란도를 통한 무역으로 경제적 윤택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인데 상업은 농업이나 공업보다 이익을 더 많이 그리고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접어들면 뜻밖에 고려청자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무신정권의 지배와 원나라의 침입 때문 입니다. 평화롭고 윤택할 때는 문화가 세련되고 성숙해지지만 불안하고 피폐해지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니 문화가 퇴보하게 된다. 가난하고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에서 문화가 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고려 말에 가면 청자의 전성기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쇠퇴하다가 조선시대가 되면 그 맥이 거의 완전히 끊어지고 마비다. 물론 조선은 유교적 가치를 내세운 왕조였기 때문에 사치와 화려함보다 질박하고 담백한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자의 맥이 끊어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