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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4.28

서울 올림픽을 사실상 현대 정주영 회장이 유치했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이 궁금합니다

88년도 서울 올림픽 대한민국 서울에서 치루었는데요 실상은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실질적으로 올림픽을 유치해서 성공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정주영 현대 회장 어떤 배경으로 어떻게 해서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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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떠한 배경이라기보다는 한국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정주영회장에게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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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조건 올림픽을 유치하기로한 전두환 정부는 정권의 2인자였던 노태우 정무장관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뒤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뛰어들면서 정부와 현대그룹의 인력을 총동원해 본격적인 유치전에 뛰어듭니다.

    노태우는 올림픽 유치 결심을 국내에 보여주기 위한 단순 얼굴마담, 실질적인 유치는 정주영과 전 대한체육회장 박종규의 공이 큽니다.

    정주영이 영국의 IOC위원들과 식사했을 때 , 식사 도중 영국의 IOC위원 한명이 정주영회장에게 '체육계에서 얼마나 일했는가 ' 묻자 이에 정주영은 '올림픽 유치를 위해 처음 일하는 것'이라 대답하니 그 위원은 오히려 '초보자를 보냈다고'말하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서먹한 분위기에서 정주영이 '일본은 이미 올림픽과 같은 엄청난 세계적인 행사들을 개최한 이후부터 엄청난 경제 대국으로서 발돋움하고 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 만약 이번에도 유치한다면 일본의 경제발전을 더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라고 직언해 다시 관심을 가지고 정주영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때까지만해도 당시 영국의 기간사업들의 상당수가 일본과 서로 경쟁을 하고 있던 시기라 이는 영국 측에서도 귀가 솔깃한 발언으로 이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선진국들은 엄청난 성장 속도를 이룩하면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을 뛰어넘는 '제2경제대국이자 최고 선진국으로 성장한 일본을 이제부터라고 견제해야된다'라는 위기 의식과 경쟁의식을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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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0년 11월 30일에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IOC에 올림픽 유치신청서를 내고 12월 2일에 접수를 완료시켰으며, 1981년 1월 6일 KOC가 올림픽 유치계획을 위한 실무반을 편성했다.

    하지만 개최 도시가 될 서울특별시가 당시 가치로 2조 원에 육박하는 예산 부담을 이유로 하여 올림픽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는데, 이는 결국 1980년 1차 올림픽 실사단 조사에서 중앙정부 및 올림픽 위원회와 서로간 최악의 불협화음을 내버린다. 또한 남덕우 국무총리가 '올림픽 망국론'을 제기하면서 반발하자 '우린 총리부터가 유치에 반대하고 있으니 상대가 되겠는가?"라는 여론이 대두되었다.[2] 또한 대부분의 경제관료와 전문가, 기업인들도 하나 같이 막대한 비용부담을 이유로 올림픽 개최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한 남북대립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공산권이 서울 유치에 격렬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현실은 명백했으며,[3] 게다가 새롭게 등장한 전두환 정부는 반민주적이고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5.17 내란,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등)이라는 페널티가 존재했기 때문에[4] 유치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들과 우려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일단 하고 보자!!"는 식으로 올림픽 유치에 나서기로 결정했다.[5]

    무조건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결심한 전두환 정부는 정권의 2인자였던 노태우 정무장관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뒤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뛰어들면서 정부와 현대그룹의 인력을 총동원하여 본격적인 유치전에 뛰어든다. 노태우는 올림픽 유치 결심을 국내에 보여주기 위한 단순 얼굴마담이었기에, 실질적인 유치는 정주영과 전 대한체육회장 박종규의 공이 크다. 그 외에 유학성 안기부장도 음지에서 로비를 벌이며 적극적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는 올림픽 유치를 전적으로 혼자만의 공로로 내세우고 그동안 고생해온 정주영을 무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훗날 정주영이 정계에 진출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노태우보다 공헌한 바가 큰 인물이면서 정주영 회장 못지않게 올림픽 개최의 필요성과 초석의 역할을 해오던 박종규는 신군부 정치세력에 의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정치생명이 끝났고, 1985년에 올림픽을 3년 앞두고 숨졌다.

    출처: 나무위키 서울올림픽 유치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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