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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천에서 목욕하기도 하였지만 실내에서도 목욕 시설이 있었습니다. 신라에서는 일찍이 목욕을 미용 혹은 청결, 의식 수단으로 중시하여 자주하였습니다. 그 결과 절에는 대형 공중 목욕탕이 설치되고, 가정에서도 목욕시설이 마련되었습니다.
고려도 마찬가지로 대가에서는 목욕시설인 정방(淨房)을 집안에 설치하였으며, 조두를 만들어 저장하고, 특히 혼례를 앞둔 규수주3는 살갗을 희게 하기 위한 목욕을 하였습니다. 난탕을 비롯하여 인삼잎을 달인 삼탕(蔘湯), 창포잎을 삶은 창포탕, 복숭아잎탕, 마늘탕, 쌀겨탕을 이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는 노출을 꺼리는 생활관습으로 인하여 벌거숭이 상태로 목욕하지 않고, 옷을 입은 채로 신체의 부분 부분을 씻어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대형의 욕조가 불필요해진 대신 대형 함지박과 대야주4가 다수 제조되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는 질병치료를 위한 온천 목욕 및 한증도 성행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