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약해진 신라, 후백제의 견훤, 후고구려(태봉국)의 궁예가 대립하였던 후삼국시대, 그리고 궁예를 숙청하고 왕의 자리에 오른 왕건이 결국 다시 삼한을 통일하여 우리 한민족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인 통일제국 고려가 세워집니다.
하지만 당시는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가 아니었고, 각 지방의 호족들이 지역 영주로서 지방을 다스리는 자치 형태였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왕권이 강하지 않았고, 수도에서 국가를 운영하더라도 지방의 호족들이 왕에 반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되면 지속적으로 전란이 일어나 안정을 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왕건은 고려의 태조가 된 후 각 지방의 호족의 딸과 혼인하여 인척 관계로 만들어서 왕조의 지지세력을 넓히고 강화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당시의 지방호족들은 원래 신라가 고구려, 백제 멸망 이후 신라에 충성했었던 세력이었으나 신라의 왕권과 국력이 약해지면서 배신하여 후백제 또는 후고구려에 붙었던 세력들이므로 고려가 통일했으나 이후 고려의 왕권도 약해지게 되면 언젠가는 반기를 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태조인 왕건은 이후 안정된 국가 운영과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지방의 호족의 딸들과 혼인을 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