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대첩의 강감찬장군은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였다는게 사실인가요?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강감찬장군이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였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귀주대첩의 강감찬장군은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였다는게 사실인가요? 문신이였다면 귀주대첩이전에 전투지휘관의 경험은 없었던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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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姜邯贊)은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 맞습니다.
983년(성종 3)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郞),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 동북면 행영병마사(東北面行營兵馬使),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 서경유수내사시랑평장사(西京留守內史侍郞平章事), 상원수(上元帥)가 되었습니다.
조용히 맡은 바 일을 하며 지내다가 목종 때 김치양이 천추태후와 부정을 하며, 정사를 어지럽히다가 무신 강조에 의해 처형되고 목종 또한 유배가는 중 살해되어 현종이 강제 즉위되는 시기에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고려와 요나라의 3차 마지막 전쟁 때 상원수직으로 군단의 지휘관을 하였으나 임시직이고 비상설직이므로 품계가 있는 공식 무관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략과 통솔력으로 전쟁에 승리하였으니 전략가로서 무관의 재능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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