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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angel
Youangel23.08.10

유방밑에있던 장량은 최후가 어떻게된건지?

안녕하세요 초한지에서 유방 밑에 책략가 장량이 있었는데요 그의 말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설이 있던데 아시는분 설명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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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적송자 언급으로 장량이 제때 물러나 숙청을 피했다는 등의 설이 있는데 유방은 장량을 숙청할 생각은 없었고 장량도 물러나거나 속세를 떠나지않고 계속 장안에 남아 지속적으로 조언했고 대외적으로 은퇴한 혜제 시기에도 아들 장벽강을 통해 막후에서 조정을 움직였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다만 폐태자 문제로 여후의 편을 든것이 크게 섭섭했는지 몰라도 영포의 반란 때 장량이 출병하는 유방을 아픈 몸으로 배웅하며 초나라의 정병들은 매서우니 앞서 싸우지 말라고 하나 유방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결국 유방은 앞정서 싸우다 영포군의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나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장량은 밥도 거의 먹지 않으면서 몸을 가볍게 유지하고 있었는데 곧 유방이 세상을 뜨자 태자의 일을 고마워한 여후는 억지로 음식을 먹였고, 이에 장량은 별 수 없이 억지로 음식을 먹게 되며 그 뒤 8년 뒤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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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역사상 개국공신의 말로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국공신에 대한 숙청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그 선례를 남겼고 그것이 전통이라도 되는 냥 각 왕조마다 공신을 숙청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한나라를 세운 결정적인 공을 세운 공신 중에 과하지욕 토사구팽이라는 말로 유명한 한신이 있었습니다. 한신 소하 장량은 서한삼걸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나 한신은 토사구팽 당하여 죽임을 당했고 소하는 비록 평탄한 삶을 살았으나 죽을 때까지 유방과 여태후의 눈치를 보며 살았으며 오로지 장량만이 일찍감치 속세를 떠나 은퇴함으로써 평온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장량은 진시황에 의해 자기나라가 멸망하자 가산을 모두모아 장사른 고용해 진시황 암살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하고 쫓기는 몸이 되었으나 우연히 마주친 노인에게서 태공병법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전략가로 이름을 떨친 장량은 잠시 항우와 불편한 동거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유방을 도와 진나라를 무찌르고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신이 토사구팽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장량은 야반도주하여 장가계로 숨어들었고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곳이 무릉도원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며 한국인 관광 선호 1순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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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나라의 유방이 통일후에 장량에게 후한 상을 내리려 하지만 그는 모든 부귀 영화를 거부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 자중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장량은 아마도 사람의 욕심이 과하면 결국 끝이 안좋다라는 것 까지를 알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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