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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09

명나라 남방 해양 탐방을 떠난 정화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명나라 초전성기 영락제 시절 정화를 시켜 남방탐험을 떠나는데요.. 그걸 정화가 맡아서 하는데요. 명나라 남방 해양 탐방을 떠난 정화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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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명나라의 환관 겸 전략가입니다.

    정난의 변 때에 공을 세워 연왕이 영락제로 등극하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거대한 남해원정단을 이끌고 동남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케냐에 이르는 30여 국에 원정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윈난성 쿤양출신으로 명나라 성조 영락제때 시작된 남해 원정의 총지휘관입니다.

    큰 키에 체격이 담대했고 성격이 활달한 장군이었고 본래의 성은 마씨, 본명은 마화 입니다. 법명은 복선, 삼보태감이라 불립니다.

    그의 국적은 중국이지만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교 집안 출신으로 윈난성의 한 지방 관리였던 마합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382년 윈난성이 명나라 에 정복되자 명나라 군대에 포로가 되어 끌려왔고 어린나이에 명나라에 끌려온 후 거세되어 환관이 되었고 연왕을 섬겼습니다.

    20년동안 환관으로 일하면서 연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최고의 고문관이 되었고 1399~1402년 정난의 변 때 연왕을 따라 무공을 세웠으며, 연왕이 조카 혜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고 황제인 영락제로 즉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환관의 장관인 태감에 발탁되었으며 정씨 성을 하사받았으며 1405년 부터 1433년까지 조카 혜제가 죽지 않고 해상에 숨어들었다고 의심한 영락제의 명을 받아 전후 7회에 걸쳐 대선단을 지휘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 케냐 스와힐리에 이르는 30여 국에 원정하여 수많은 외교사절이 왕래하였고 명나라의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비단, 도자기를 가지고 열대지방의 보석, 동물, 광물 등을 교환하여 중국으로 가져와 무역상의 실리를 획득했습니다.

    1405년 소주를 출발한 제 1차 원정때 보선만 62척, 장병2만 7800여 명이 분승했고 선단은 총 317척으로 말라카 해협에서 해적들을 물리치고 인도 서안의 캘커타까지 도달해 진국비를 건립했으며 마지막 원정이었던 영락제의 손자 선덕제때인 1431년, 제 7차 원정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들렀으며 아프리카 케내의 스와힐리 해안까지 항해했습니다.

    정화가 지취한 명나라 세력의 인도양 진출은 1492년 콜럼버스, 1497년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양 도달보다 80~90년 앞서는 것이었으나 문신들의 환관에 대한 강력 견제에 부딫혀 원양선이 제거되고 무역이 금지되면서 더이상의 해양개척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화는 1433년 마지막 원정을 끝낸 이듬해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명나라 시대의 장군으로 본명은 마삼보이다. 영락제의 명으로 7차례에 걸쳐 남해에 대원정을 떠난 것으로 유명하여 해상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마삼보에서 마는 이슬람의 무하메드에서 따온 것이고 이름은 삼보인데 탐험가이자 장군 환관 제독 전략가 외교관이자 정치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