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이 어떤 것이었나요?
1979년 부산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이 독재 정권에 맞선 시민항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마민주항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군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대한민국 부산직할시와 경상남도 마산시 등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박정희의 제4공화국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부마항쟁의 뜻: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민중의 항쟁, 저항이라는 뜻
의미: 독재정권에 저항한 부산, 마산 학생과 시민들의 저항.
역사적 배경: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언합니다. 유신이란, 새로운 체제,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는 의미이며 10월달에 발표가 된 새로운 헌법인 유신헌법, 10월 유신이라고도 합니다. 이 새로운 법을 통해서 박정희는 3번 연달아서 대통령에 당선 될 수 있었지요.
헌법: 과거에 헌법에서는 대통령은 정해진 임기 동안만 할 수 있고 연달아서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것 (연임) 을 한 번 더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헌법이 등장한 것은 박정희가 이끈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한민국 제2공화국을 붕괴시켰으며 이를 5.16 쿠데타라고 합니다. 1961년 5월 16일에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헌법을 바꾸고 한국의 대통령은 임기는 4년인데 선거를 통해서 당선 되면 또 4년 더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제도 (미국식 대통령제도)를 만들고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 법에 따르면, 박정희는 1973년~1967년 한 번 대통령을 하고, 1967년~1971년까지 대통령을 한 후에 퇴임을 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그는 정해진 임기가 다되니 한 번 더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고자 했지요. 1선, 2선은 이미 과거에 정해져 있던 헌법을 따르면 되는데 한 번 더 대통령을 하려면 헌법을 바꾸어야만 했지요.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 담판을 지어 대통령이 3번 연속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었고 이를 3선 개헌이라고 합니다.
3선 개헌을 통해서 박정희는 3번 연속 대통령이 되었고 1971년부터 임기를 시작했는데 대통령을 죽을 때까지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유신헌법을 만들었습니다. 유신헌법은 1972년에 발표가 되었고 이 헌법으로 박정희늠 죽을 때까지 대통령직을 할 수 있었지요. 1972년 10월에 만들어진 유신헌법이라고 해서 10월 유신이라고하며 이를 제2차 쿠데타라고 하는 이유는 박정희가 처음 일으킨 5.16 쿠데타 이후에 스스로 세운 헌법을 자기가 직접 파괴했기 때문에 제2차 쿠데타라고 하며 다른 말로는 친위 쿠데타라고도합니다. 친위 쿠데타라는 말은 스스로 자신이 세운 정부를 붕괴시켰다라는 뜻입니다.
박정희는 죽을 때까지 대통령이던 1978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정당인 공화당(여당)이 야당에게 패배를 합니다. 이 시기에는 독재타도를 주장하는 시위가 점점 강해지던 시기였으며 여기에 오일 쇼크로 인해서 한국인들은 극심한 경제난을 경험하고 있었지요. 현재 박정희 시대라고 하면 경제발전만 기억하고 잘 먹고 잘 살았던 시기만 기억되는 경향이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 말기에는 극심한 경제난이 국민에게 엄슴했던 시절입니다. 1978년에는 제2차 오일쇼크가 한국경제를 강타했고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이 없어서 이런 기름을 구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지요. 석유를 수입에 의존했던 한국은 높아진 석유 가격으로 엄청난 적자를 보았고 석유가 없이는 한국산업이 돌아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가 붕괴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오일쇼크라는 경제위기와 박정희 대통령이 지원하는 부정선거임에도 야당이 승리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여기에 김영삼 국회의원이 속한 신민당 건물에서 가발을 만들어서 수출하던 회사인 YH무역의 여자 노동자들이 폐업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하자 김영삼 국회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하는 일이 발생하며 이에 김영삼 의원이 주로 활동한 경남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지요. 이때가 1979년 10월 초였고 부산에서 유신철폐를 외치는 학생운동이 처음 발생했습니다. 부산에서 유신철폐라는 구호가 등장했고 유신철폐라는 말은 박정희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투입되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던 차지철은 군대를 동원해서 시위을 강경하게 진압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고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량학살과 같은 민중에 대한 학살이 발생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 없다고 말을 했다고 하네요.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음날 마산지역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학생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자 위수령이 마산지역에 선포되었으며 부산과 마산 지역에는 군대가 동원되어 시위를 진압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 부마(부산마산)항쟁이라고 합니다. 부마항쟁에 군대가 동원 된 1979년 10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저격하 1979년 10월 26일에 발생했기 때문에 10.26사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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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민주 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현재의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시위가 일어난 것을 말한다. 10월 16일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유신철폐"의
구호와 함께 시위를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직할시와 경상남도 마산시 등의 지역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으로 박정희의 제 4공화국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이 총재로 당선 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되었습니다.
이어 8월 11일 YH사건, 9월8일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 10월 4일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함으로 유신 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크게 고조되었고 그러한 가운데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나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 되어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을 자극했습니다.
김영삼의 정치적 본거지인 부산에서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 5000여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 시민들이 합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 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파출소, 경찰서, 도청, 세무서, 방송국 등을 파괴하였고 18일과 19일에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18일 0시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합니다.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일주일 채 지나지 않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 체제는 종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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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부산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대한민국에서의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발생한 시민항쟁입니다. 이 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 마산지역에서 시작되어 1979년 10월 20일에 끝났습니다. 이 항쟁은 당시 우리나라의 독재 정권이었던 박정희의 지배에 반대하여 민주화와 인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항의와 시위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 주로 언급되는 것은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를 YH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것을 꼽습니다. 이 사건으로 유신 정권의 위기가 다가왔고, 이후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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