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Jy천사1004
Jy천사100424.04.28

이괄은 어떤 불만이 있어서 난을 일으킨건지?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서 일명 "이괄의 난"이라고 불렸던 사건이 있는데 이괄은 공신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불만에서 이 사건이 전개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괄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인조 반정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서 2등 공신에 책봉되고 한성부윤에 임명된 것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이에 더해 이괄의 아들 이전이 인조의 총애를 받는 신성군의 양자가 되어 권력을 쥐게 될 것을 우려한 김류와 이귀 등이 이괄 부자를 제거하려고 하자, 이괄은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난을 일으켰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괄은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광해군 축출에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괄은 논광행상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불만을 품고 1624년 난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이괄은 반정 당시 김류와 불화로 인해 견제를 받았고, 이를 인해 자신이 낮은 자리에 배정되었다고 생각하였으며, 결국 2등 공신에 책록되고, 평안도 병마사로 좌천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게다가 이괄의 아들이 반역에 휩쓸려 압송될 위기에 처하자 난을 일으킵니다. 한양을 점령하였으나 이후 갈마재 전투에서 패배하여 진압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이괄은 1624년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유는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33인은 정사공신에 녹훈되고 이괄은 반정계획에 늦게 참여했다는 이유로 2등에 책록되고 아우와 아들은 논공행상에서 아예 제외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습니다. 한때 한양을 점령하자 인조는 공주까지 피난을 떠났습니다. 이후 장만 등이 이끄는 관군의 활약으로 반란군이 이천까지 도망갔고 1624년 2월 15일 아침 반란군 기익헌 이수백 등이 이괄 한명련 등 9명의 목을 베어 관군에 투항하면서 난은 진압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신이 인조반정에 공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2등 공신에 임명하고 자신을 숙청하려는 움직임이

    조정에서 있으니 먼저 움직이게 됩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인문·예술 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이괄은 1등 공신이 아닌 2등 공신으로 책봉된 것에 불만을 가졌고, 중앙에서 당시 왕이었던 인조에게 신하들이 자기 자신이 역모를 꾀한다고 역적으로 몬 것에 분개해 난을 일으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