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판소리가 문자로 적힌 것이 판소리계 소설인가요? 아니면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은 내용이 다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는 판소리를 보고 듣는 청중이 공연 현장에서 느끼는 것, 판소리계 소설은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판소리를 보고 들을 때의 의미와 판소리계 소설을 읽을 때의 의미는 동일한 내용이라도 사뭇 다릅니다.
판소리의 의미는 문학적 사설과 음악적 감흥, 연극적 정서 등이 합성되며 여기에서 빚어지는 현장적 의미가 되며, 판소리 창자는 등장인물의 행위와 언술을 모방하게 되는데 정서적 동화를 이룩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극적인 사설과 역동적인 발림은 정서적 감흥을 쉽게 일으킵니다. 극적인 사설 내용 위에 극도로 세련된 음율이 입혀짐으로 강도 높은 감흥을 유발하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된 것입니다. . 따라서 판소리 사설과 판소리계 소설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별로 보이지 않으며 문체 등의 부분적인 차이만 있을 뿐 인데 판소리계 소설로는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토끼전>, <화용도>, <배비장전>, <옹고집전>, <장끼전>, <숙영 낭자전> 등이 있습니다. 판소리계 소설은 살아 숨쉬는 듯한 순수한 우리말과 생생한 느낌의 의성어 의태어가 고스란히 채록되어 있어 다른 국문소설 한문소설 혹은 번역소설에서 맛보기 어려운 독특한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이 갖는 의미는 문면상으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문면상의 차이는 양자가 그리 크지 못하다. 그래서 판소리 공연 현장에서 채록한 창본을 독서물로 간주하고 읽으면 한 편의 판소리계 소설이 될 것이고, 판소리계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판소리로 공연하면 한 편의 극이 되는 소이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의미상의 차이는 수용자의 수용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판소리의 의미는 판소리를 보고 듣는 청중이 공연 현장에서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고, 판소리계 소설의 경우는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1) 그런데 판소리를 보고 들을 때의 의미와 판소리계 소설을 읽을 때의 의미는 동일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사뭇 다른 것이다.
판소리의 의미는 문학적 사설과 음악적 감흥, 그리고 연극적 정서 등이 합성되면서 거기서 빚어지는 현장적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판소리 창자는 등장인물의 행위와 언술을 모방하게 되는데, 정서적 동화를 이룩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극적인 사설과 역동적인 발림은 정서적 감흥을 쉽게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극적인 사설 내용 위에 극도로 세련된 음율이 덧입혀져 있음으로써 그것은 훨씬 강도 높은 감흥을 유발한다. 판소리 창자가 애절한 육성을 통해 일인칭적 체험을 직접 호소하면 청중들은 객관적인 구경꾼으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탄성을 지르면서 극중 상황 속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서적 동화를 이룩한 상태에서 청중들이 무엇을 인지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춘향가〉에서 극중 춘향과 정서적 동화를 이룩한 상태에서 청중들은 춘향이 겪는 경험 중에서 사랑의 애환을 가장 심도 있게 체험한다고 생각된다. 춘향이 발화하는 대사의 대부분이 애정의 좌절과 고통에서 나오는 내용이며, 애정 문제에서 청중들과의 정서적 공감대가 가장 잘 형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신분적 갈등도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애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문제되는 것이며, 공연 현장에서 유발되는 정서적 동화의 정도에 있어서 애정적 감정에 비해서는 점착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사랑의 감정은 인간의 여러 감정적 문제들을 포괄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것이고, 그 보편성 때문에 정서적 힘을 더욱 크게 갖게 되는 것이다.
〈춘향가〉의 판소리 공연은 대개 부분창으로 행해지는 것이 관습인데, 거기에서 불려지는 토막 소리들은 대부분 춘향의 애달픈 마음을 표현하는 대목들이다. 그러한 한 대목을 들어도 청중들은 판소리적 관습을 통해 춘향이 처한 전상황을 체험하기 마련이다. 판소리가 이와 같이 토막 소리로 공연될 수 있다는 것은 그 토막 소리들이 이미 의미의 초점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흔히 불려지는 〈흥부가〉에서의 ‘박타령’이나 〈심청가〉에서의 ‘범피중류’ 한 대목을 들어도 〈흥부가〉와 〈심청가〉 전체를 관류하는 핵심적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춘향전』을 읽는 독자는 〈춘향가〉를 듣는 청중처럼 사랑의 애환에 초점을 집중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설 내용은 똑같다고 할지라도 우선 정서적 동화의 점착력이 판소리처럼 끈끈하지 못하다. 그것은 음악적 감흥과 극적 연기력, 그리고 애절한 육성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글은 본질상 독자로 하여금 글의 내용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취하게 한다. 『춘향전』을 읽을 때 독자들은 글의 내용인 ‘무엇’을 추구하면서도 ‘어떻게’나 ‘왜’에 대해서도 흥미의 초점을 분산시키게 된다.
작품 속에서 춘향이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칠 때 무엇 때문에 춘향이 고통스러워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독자들은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춘향의 행위에서 신분적인 갈등을 극복하고 인간적인 해방을 구현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든가 현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항거의 표현이라든가 하는, 사랑을 구현하는 과정에 딸린 부수적인 의미들까지 읽어내게 된다.
그러나 『춘향전』은 직선적인 이야기성에서 환기되는 의미들만으로 구성된 서사체가 아니다. 『춘향전』은 여러 곁가지의 주변적인 이야기들에도 흥미의 초점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춘향전』의 의미는 사랑·신분·권력·정절·제도 등 현실적 무게를 갖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움·상스러움·바보스러움 등과 같은 현실적 무게가 없는 듯한 요소들에서도 많은 의미가 분비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춘향전』은 선행 담화의 전통적인 서정적 이미지들을 확장적으로 채용하고 있음으로써 상황적 정서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데, 『춘향전』을 읽는 독자는 이러한 서정적 감흥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춘향전』을 읽는 독자들이 판소리도 수없이 들은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춘향전』의 행간 속에서 판소리적 감흥을 반추해내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춘향전』의 독서에는 여러 가지 의미의 복합 작용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춘향전』의 독서에는 〈춘향가〉의 토막 소리와 같은 개념의 읽기가 존재할 수 없다. 〈춘향가〉의 토막 소리는 전체의 정서를 한데 집중시켜 울려주는 작용을 하지만 『춘향전』의 독서는 한 부분을 골라 읽는다고 해서 그러한 정서를 체험할 수는 없다. 독자는 간혹 건너뛰면서 읽기도 하고, 한꺼번에 다 읽지 않고 나누어서 읽기도 하지만, ‘어사 출도 대목’을 먼저 읽고 ‘사랑가’를 나중에 읽을 수는 없다. 『춘향전』의 독자는 책의 순서에 따라 선조적으로 독서를 진행할 수밖에 없고, 또 자신이 놓인 정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면서 분석도 해가면서 읽기 때문에 〈춘향가〉에서는 불가능한, 판소리계 소설 나름의 독특한 독법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판소리의 세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 공연 현장에서 기록하여 독서물로 간주하고 읽으면 한 편의 판소리계 소설이 됩니다, 판소리계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판소리로 공연하면 한 편의 극이 됩니다
그러므로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의미상의 차이 판소리의 의미는 판소리를 보고 듣는 청중이 공연 현장에서 느끼는 것이 되는것이고, 판소리계 소설의 경우는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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