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정조가 병상에 누운지 보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정조는 종기가 있었는데 이와 더불어 몸속에 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다스리는 약을 사용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도제조 이시수는 경옥고를 비롯해 육군자탕과 생맥산, 팔물탕을 추천했는데 이는 몸에 열을 더하는 약재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연훈방과 성전고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종기가 아직 다 치료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경옥고는 종기치료에는 오히려 해가되는 약이므로 현대의학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처방이라고 합니다. 한편 치료할 적에 이미 그의 종기는 커져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애초에 치료시기를 놓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연훈방 등을 단시간 내에 사용하여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였기에 이것이 정조를 더욱 위독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정조에 대한 처방이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당시 궁궐 주치의는 심환지였고 그는 노론강경파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따라서 독살설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만 정조의 죽음을 야기한 오회연교에 대해선 친벽파인 이만수를 병조판서에 임명하고 역시 벽파의 인물 이서구를 중용하겠다고 하였으니 과연 오회연교의 화살은 사실 벽파가 아닌 시파를 노린 것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수기인 <한중록>에서 독살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조의 죽음을 병사로 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가 죽은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패혈증 등의 기저질환이 있었다는 설고 독살설도 있었지만 검증된 바가 없기에 그냥 자연사로 넘어 가게 된 것 이라고 합니다.독살의 의심은 있지만 병사 라고 결론 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