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왕세자를 무엇이라 호칭했나요?
조선시대는 왕세자 국본이라 칭했는데 고려시대에도 차기 왕이 될 왕자를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을었듯한데 뭐라 칭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왕태자라고 불렀습니다.
왕태자는 독립된 주권을 가진 왕국의 왕의 보위를 이을 왕자를 지칭하는 말. 즉 자주국 왕의 후계자다.
한국의 경우 고대부터 기본적으로 왕태자를 사용하였으나 조선시대 이후로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바탕으로 외교를 했기 때문에, 이전 왕조들과는 달리 자국의 군주를 자주국의 군주가 아닌 제후왕으로 지칭했고, 이탓에 '왕태자'라는 용어 자체가 사멸되었다. 물론 조선 이전에도 조공책봉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외왕내제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전근대에서는 15세 전후로 태자가 책봉 되었다.
고조선[6]부터 고려 중기까지 왕태자를 사용하다 고려 후기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 호칭이 왕세자로 격하되었다. 그것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으며 고종 32년(1895) 군주의 칭호가 대군주로 바뀔 때 함께 왕태자로 복귀되었고, 광무 원년(1897년) 칭제를 하며 제위 계승자의 칭호를 황태자로 격상하였지만 13년 만에 대한제국이 경술국치로 멸망하면서 황제직이 일본 제국에 의해 이왕으로 격하되어 황태자 칭호 역시 이왕세자로 격하되었다.
태조 왕건 등의 고려 초기를 다루는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고려 초기엔 모든 왕자들이 너도 나도 태자라 불려서 왕위 계승자는 맏아들이라는 뜻의 정윤(正胤)이라 따로 부르기도 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기록 상 혜종, 경종, 성종 세 사람이 정윤에 봉해졌다.
갑오개혁 이전의 조선과 달리[7] 갑오개혁 이후의 조선은 군주의 칭호가 대군주로 바뀌어 왕실 호칭이 격상되어서인지 왕태자 뿐만이 아니라 왕족에게도 전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독립신문의 기록을 보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이전인데도 불구하고 의화군(의친왕)과 흥선대원군을 가리켜 전하라고 한 기록들이 존재한다.[8]
현대 한국인들은 왕태자를 어색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왕태자'라는 칭호가 고조선부터 원삼국시대, 고려 왕조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조선 왕조가 50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왕세자'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만 보면 왕세자를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으나 한국사 전체를 따졌을 때는 왕태자가 더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황제 제도가 성립한 이래로 유교적 시스템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면서 '황(제)+태(太)', '왕+세(世)'의 조합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착했기 때문. 그래서 현재는 'Crown Prince' 등 외국의 군주 지위 계승 예정자의 작위를 번안할 때 '황태자', '왕세자' 등의 용어를 쓰지 '왕태자'란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다. 용어 간의 격을 따지면 왕세자보다 왕태자 쪽이 격이 높으며 왕태자보다 황태자 쪽이 격이 높다.출처: 나무위키 태자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세자는 왕의 아들인 왕자중 차기 1순위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자를 부르는 호칭이지요.
이런 왕세자라는 호칭이 고려시대의 경우 왕태자라는 호칭을 썼다고 합니다. 당시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이런 호칭이 쓰인 것 같습니다. 이후 조선을 지나 고종이 대한제국을 공표한 이후 황태자라는 호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초기 모든 왕자들을 태자라고 불러 왕위 계승자는 맏아들이라는 뜻으로 정윤 이라 따로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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