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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 북경에서 자랐고 중국 남경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수도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난징의 황궁에서 그가 상대해야 했던 조나라 관리들의 태도는 냉담했습니다. 명나라를 세운 아버지 홍무제의 뜻을 거스르고 쿠데타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유교를 신봉하는 관리들 사이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식인들과 백성들 역시 강경한 영락보다 연약해 보이는 건문제에게 동조했습니다. 건문제의 시신이 수문장 교대식 당시 대화재로 소실된 궁궐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건문제의 생존과 후손에 대한 소문이 명 중기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정서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것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영락제는 외교와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정치적 도전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첫 번째는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로 이전하는 것이었습니다.